[베니스비엔날레 미리보기] '달집태우기'·'한국의 향'...작가들이 꺼낸 특별한 '기억과 감각'

2024-03-21 00:00
김윤신·이배, 어릴 적 추억서 출발한 작품 '주목'
한국관 건립 30주년 특별전, '보이지 않는 물질도 물질'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윤신 작가 개인전 ‘Kim Yun Shin’ 전시 전경 [사진=국제갤러리]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쏟아지는 별을 봤던 기억이 생생해요. 촛농에 물감 가루를 넣은 후 길에서 주워온 나무에 칠하고 놀았습니다.”

우리나라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 작가는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Kim Yun Shin’ 간담회에서 유년시절을 회고했다. 
 
김 작가는 “나무를 굉장히 좋아한다. 살아 있는 나무는 숨을 쉰다”며 “꽃과 나무에 물을 줄 때에도 대화를 하면서 한다”고 말했다.
 
그의 어릴 적 추억은 전시장 곳곳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재료의 물성, 특히 나무 고유의 특성을 살린 작품은 남달랐다. 어린 시절 색칠하며 즐거웠던 추억은 구순을 바라보는 작가의 현재 작업까지 이어진다. 김윤신 작가 만의 특별한 색에는 자연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김 작가는 오는 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전시장 일대에서 열리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김 작가는 이강승 작가와 함께 베니스비엔날레가 본 전시에 초청됐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은 나무와 석재 조각, 석판화, 회화를 아우르며 고유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1984년부터 40년간 아르헨티나에서 작품 활동을 한 김 작가의 베니스비엔날레를 통해 새롭게 조명 받게 됐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에서 ‘달집태우기’ 공식 포스터 [사진=조현화랑]
 
김 작가의 나무처럼, 어릴 적 추억은 작가의 기원과 궤를 같이 한다. ‘숯의 작가’로 잘 알려진 이배 작가는 베네치아에서 우리 전통문화인 ‘달집태우기’를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배 작가는 “숯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달집태우기 때문이란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청도 출신인 작가는 지난 2월 24일 경북 청도에서 세계 곳곳에서 보내온 소원을 한지에 먹으로 옮겨 쓴 뒤 달집에 매달아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을 잇는다는 의미를 품은 듯하다. 
 
영상 작품 ‘버닝’은 달집에 불이 붙는 순간부터 활활 타오르다 다음날 숯만 남는 모든 과정을 보여준다.
2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 기자간담회에 구정아 작가(오른쪽부터), 예술감독인 이설희, 야콥 파브리시우스가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한국관 전시와는 별도로 오는 4월 18일부터 9월 8일까지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베네치아의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연다.
 
회화나 영상 등 시각적인 작품이 아닌 고향을 떠난 이들이 기억하는 ‘한국의 향’을 주제로 설정했다. 
 
한국에서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향을 찾기 위해 한국관 대표작가 선정된 구정아 작가와 전시팀은 지난해 6∼9월 한국 외교부와 재외 한국대사관, 한국계 입양인, 세계 각지 한인, 한인 학교, 한국계 미국인 협회, 탈북민, 서울 외신기자 클럽 등을 대상으로 한국 도시·고향에 얽힌 향 이야기 600여편을 수집했다.
 
1960년대 이전의 기억에선 비에 젖은 흙냄새 또는 녹음과 같은 자연의 향이, 1960∼1980년대에는 매연과 탄내, 오염된 공기 등이 언급됐다.
 
1990∼2000년대에는 공중목욕탕과 밥 짓는 냄새 등이, 2010년대에는 비 온 뒤 아스팔트 냄새, 지하철의 차가운 금속 냄새 등이 언급됐다. 
 
이 가운데 25명의 기억을 선정한 뒤 향수업체 논픽션과의 협업을 통해 17개의 향을 개발했다. 한국관 전시장에서는 디퓨저를 내장한 브론즈 조각을 이용해 16개 향을 분사하고, 향수 1종을 내놓는다.
 
구 작가는 “보이지 않는 물질도 물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전시를 통해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