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앤피플] "'전문심리위원' 활용, 진술 모순 입증"…성폭력 무죄 이끈 김종민·차승민 평안 변호사

2024-03-13 12:09

법무법인 평안의 김종민 변호사(왼쪽)와 차승민 변호사(오른쪽)가 11일 서울 서초구에 교대역 인근에 있는 평안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에서 최근 '성인지 감수성'이 중요해졌지만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리학, 의학 분야 등의 전문가 의견서를 통해 변호사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가려내는 데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종민·차승민 법무법인 평안 변호사는 최근 주거침입·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 변호를 맡아 유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 받았다. A씨의 무죄를 이끌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전문심리위원 제도'였다. 전문심리위원 제도는 법원이 건축, 의료, 지적재산권, 환경 등 분쟁해결을 위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건을 심리할 때,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법원 외부의 관련 전문가에게 설명이나 의견을 진술하게 하는 제도다. 

차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279조의2에 '전문심리위원의 참여' 규정이 있지만 실제로 이 제도가 있다는 점을 변호사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법정에서 변호사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말로 주장하는 것보다 전문가 의견을 받는다면 억울한 사람, 무고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폭력 사건 맡아…사건 검토 중 진술의 모순점 발견

A씨 사건은 A씨가 항소하면서 김 변호사와 차 변호사가 맡게 됐다. A씨는 지인 B씨의 집에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던 B씨를 성폭행 한 혐의를 받았다. 1심 법원은 항거불능 상태의 B씨를 성폭행 한 혐의 등을 인정해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기록을 검토하고 여러 차례 법정에서 증인 신문 등을 거치면서 이들은 B씨의 진술에 모순이 있다는 점을 알아챘다. 

차 변호사는 "A씨와 B씨는 평소 친했고 이미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가졌던 사이였는데, A씨가 B씨 집에 들어간 경위를 두고도 B씨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제가 술에 취했을 때 A씨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생각해보니 다같이 술자리를 가졌을 때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 같다', '비밀번호를 직접 알려줬다'고 했다가 법정에서는 'A씨가 비밀번호를 훔쳐봤다'고 하는 등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준강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B씨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어야 했는데, 그렇다면 과음으로 인한 기억 상실 현상인 '블랙아웃'이 아니라 블랙아웃에서 더 나아가 의식까지 상실하는 '패싱아웃'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며 "하지만 B씨는 '저항했다', '밀친 기억이 난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잘 난다'는 등 모순되는 진술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진술의 신빙성을 어떻게 주장할까 고민하다가 법관 출신인 김 변호사님이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잘 알고 있어 법원에 신청서를 제출했다"며 "법원에 심리학과 의학에 전문적 지식을 가진 전문심리위원을 불러달라고 요청했고, 법원에서 선정한 후보 2명 중 1명을 최종적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전문심리위원 활용 무죄 입증…방어권 보장 위해 제도 고지 필요
 
차승민 변호사가 전문심리위원 의견서를 바탕으로 PPT 변론을 펼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전문심리위원 선정 후 차 변호사는 그 동안의 사건 기록들과 질문하고자 하는 내용, 의견서 등을 담아 법원을 통해 전문심리위원에게 보냈다. 약 한 달 후 받아 본 전문심리위원 의견서는 22쪽에 달했다. 전문심리위원 의견서에는 △알코올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학술적 분석 △B씨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 △B씨의 주량과 음주습관 △B씨 진술의 신빙성 등에 대한 의견과 각주가 상세하게 쓰여 있었다.

 차 변호사는 "전문심리위원으로부터 B씨가 당시 '패싱아웃'이 아닌 '블랙아웃'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 친구들에게서 들은 얘기들로 인해 B씨의 진술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객관적으로 확인받았고, 무죄라는 결과를 받아내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다만 전문위원이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데이터가 많이 확보돼야 제도를 활용했을 때 실효성이 있을 것 같다"며 "이번 사건은 B씨가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당시의 상황, 증인신문에서의 B씨 진술 등이 충분히 많이 확보됐고 사실관계가 상세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제도를 활용했을 때 소득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차 변호사는 제도가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법원이 제도에 대한 고지를 해 줄 필요성이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전문심리위원이 소송절차에 참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법원에서 사전에 통지해 신청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소송 당사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법원에서 제도를 의무적으로 고지하는 방법 등을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