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민간부터 공공까지 퍼진 '공사비 갈등'...정부가 중재자 역할 나서야

2024-03-13 05:00

건설부동산부 김윤섭 기자

건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 여파로 공사비가 급증하면서 건설 현장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물가 인상에 따른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고 조합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마찰이 심화되는 것이다. 

최근 공사비 상승은 '역대급' 수준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에 따르면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재료, 노무, 장비 등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지표인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 말 121.80에서 올 1월 기준 154.64(잠정치, 2015년 100 기준)로 32.8% 뛰었다. 

건설사와 조합 모두 각자의 사정은 있다. 건설사는 공사비를 올리지 않으면 수익이 감소한다. 이익을 위해 사업을 진행하는데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까지 생긴다. 건설사들도 어렵게 수주를 따낸 사업을 조합과의 갈등으로 멈추고 싶지 않을 테지만, 공사비 인상 요구라는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조합 입장에서도 갑작스러운 공사비 상승을 바로 수용하기는 힘들다. 공사비가 적은 금액이 아닌 만큼 조합이 부담해야 할 금액도 급격하게 오르기 때문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공사비에 갈등으로 사업이 중단되는 사태는 민간은 물론 공공 현장까지 확대되고 있다. 세종시 집현동에 건설 중인 행복도시 4-2 생활권 공동캠퍼스 건설공사 18공구 공사가 지난 5일 다시 중단됐다. 공동캠퍼스와 패키지로 함께 발주된 평택 고덕 A-58 블록 아파트 건설공사 14공구도 같은 날 공사가 멈췄다. 지난 1월 1일에는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 현대건설이 1년치 공사비 1800억원을 받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신반포 22차 재건축, 행당 7구역 재개발 사업도 공사비로 갈등을 겪고 있다.

공사가 중단되거나 일정이 미뤄지면 건설사는 늘어나는 기간에 따른 손실을 감당해야 하고, 조합도 더 많은 분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수분양자들 역시 입주 시기가 지연되는 등 피해를 받게 된다. 또 급격한 공사비 인상은 향후 3~4년 뒤 집값 급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높은 공사비가 분양가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사비 갈등으로 인해 사업이 중단되거나 취소되면 아파트 공급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발생한다.

공사비 갈등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문제다. 공사비 갈등 사태에 너무 익숙해져 대응이 늦으면 더 큰 악재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를 배포했다. 그동안 모호했던 공사비 산출 및 증액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 불필요한 분쟁을 줄인다는 취지다. 다만 현장에서는 해당 제도들에 강제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준계약서가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이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절차도 수개월이 걸리는 데다, 검증 결과는 법적 강제성이 없다. 검증도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다. 

이대로라면 공사비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갈등을 중재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부의 대책이 '보여주기식'에 그치지 않으려면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