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의 상징' 곽분양행락도 우리 손으로 되살렸다

2024-03-11 15:07

11일 서울 동작구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이 곽분양행락도 보존 처리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부귀와 다복을 기원한 '곽분양행락도'가 우리 손으로 되살아났다. 조선 후기에 특히 유행했던 그림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은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이하 라이프치히 박물관)에 소장된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에 대한 보존 처리를 마치고 11일 언론에 공개했다.

이날 재단은 서울 동작구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공개회를 열고 2022년 11월부터 15개월간 진행한 곽분양행락도의 보존처리 과정과 그 성과에 대해 설명했다. 

곽분양행락도는 19세기 조선 후기 회화로, 중국 당나라 시대에 부귀영화를 누린 노년의 분양왕(汾陽王) 곽자의(郭子儀, 697-781)의 모습이 담겼다. 그림은 안녹산의 난을 진압하고 토번(吐蕃·티베트)을 치는 데 공을 세운 곽자의가 노년에 호화로운 저택에서 가족과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전장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운 곽자의는 슬하에 아들 8명과 딸 7명을 두었고, 85세까지 장수했다. '곽분양행락도'는 국내외를 합쳐 37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희 재단 이사장은 "곽자의는 추후 우리나라에서 충신으로서의 모습보다는 장수 복록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많은 그림에 등장하게 됐고, 곽분양행락도는 조선 후기 길상화로 유행했다"라며 "복원된 그림은 이달 말 독일 현지로 운송해 연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곽분양행락도 보존처리 전 사진 [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곽분양행락도 보존처리 후 사진 [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곽분양행락도는 1902년 독일의 미술상 쟁어(H. Sänger)로부터 가리프치히 박물관이 구입해 소장해왔다. 그동안 그림 부분만 잘린 채 8장 낱장으로 수장고 보관되던 곽분양행락도는 이번 보존 처리를 마치고 8폭 병풍에 담겼다.

1∼3폭에는 집안 풍경과 여인과 앞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 모습을, 4∼6폭에는 잔치를 즐기는 곽자의의 모습이 그려졌다. 7∼8폭에서는 연못과 누각의 모습을 각각 엿볼 수 있다.

2폭의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백자도(百子圖)의 도상을 차용하고 있어 곽분양행락도와 백자도의 상호 영향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재단 측은 처음 국내에 들여왔을 당시 유물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나무틀이 뒤틀려 그림만 분리하는 과정에서 1면과 8면의 화면 일부가 잘리기도 했다고.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가 곽분양행락도 복원 과정을 설명하고 있따. [사진=김다이 기자]

재단은 특히 병풍이 없던 그림에 병풍을 만드는 작업이 가장 고된 작업이었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 스펜서 미술관과 시카고미술관 수장고에 묻혀 있던 곽분양행락도를 복원한 경험이 있었던 만큼 당시 사용한 재료와 기술을 적용해 복원할 수 있었다.

그림에 남아있던 얼룩은 약품을 사용해 깨끗하게 지울 수 있지만, 원본의 느낌을 보존하기 위해 무리해서 제거하지 않았다.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 겸 한국장황연구회 회장은 "당시 상황과 쓰였던 기술을 재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면서 "병풍 틀이 없었기에 어떤 느낌으로 틀을 짜야 할지 무척 어려웠다. (병풍 배경으로 쓰인)비단은 조선시대 문양을 구현하기 위해 점 하나하나를 직접 찍어서 문양을 만드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재단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국외문화유산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사업'을 통해 총 10개국 31개 기관을 대상으로 53건의 국외 소재 문화유산을 보존처리했다. 

김 이사장은 "외국에 소장된 우리 유물들을 꼭 환수가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이 보다 온전히 보존되고 현지에서 널리 소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