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대안 데이터, 한국에서 신기루로 그칠까?
2024-03-11 18:00
10여 년 전 데이터가 '미래의 석유'라고 일컬어지며 빅데이터라는 말이 언론에서 연일 회자됐을 당시 금융권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대안 데이터(Alternative Data)'가 금융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것처럼 기대했다.
그동안 신용평가기관(CB)의 정보로만 대출 위험도를 평가하던 금융시장에서 변별력 있는 리스크 측정과 판단이 어려웠던 다양한 고객군을 대안 데이터를 활용해 포용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특히 사회초년생을 비롯해 소상공인,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주부·프리랜서 등 은행권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없었던 '신파일러(금융 이력 부족자)' 고객이 수혜의 대상으로 언급됐다.
그리고 다양한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소셜리스크 평가와 함께 약관을 읽는 시간, 대문자·소문자를 구분하는 정도 등 온라인·모바일상 고객 행동 특성을 통해 리스크를 판단하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국, 동남아시아 등 CB 인프라가 구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이런 대안 데이터가 짧은 시간 안에 신용평가를 위한 데이터의 '주류'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알리페이 등 빅테크·핀테크 업체 고객의 금융 거래 데이터가, 인도나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문자(SMS)가 대안 데이터로 활용돼 대부분의 신용평가에 반영됐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국내 시장에서는 대안 데이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대안 데이터는 일종의 홍보용 용어일 뿐"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대안 데이터를 적용해 리스크를 낮추거나, 대출이 나가지 않았던 사람에게 대출해 주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회사도 오랫동안 상당히 다양한 대안 데이터를 실험하며 금융에서 활용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연구에 투자했다. 이런 과정에서 이 같은 업계의 인식에 일부 동조한 바 있다.
최근 이런 생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안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고도화하면 국내에서도 대안 데이터의 실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은 인공지능(AI)이다. 필자도 똑같은 데이터로 전통적 방식으로 접근을 했을 때와 AI 기술을 적용했을 때 성능 차이가 2배 이상 벌어지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최근 대형 금융회사와 핀테크 업체에서도 이런 방향을 예측·준비하고 있다. 그간 보유 대안 데이터의 양이 뿌듯했다면 이제는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력'이 핵심 화두다. 금융권은 매우 빠르게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 기술적 협업을 논의하고 있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해 왔다고 생각한다. 마이데이터를 통해 더욱 많은 데이터가 흐르도록 했고, 몇 년 만에 마이데이터 가입자가 2000만명을 돌파했다. 또한 대안신용평가 등 다양한 CB 라이선스를 허용해 기술과 데이터 기반 금융의 혁신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이제는 다양한 업계가 기술력을 통해 대안 데이터로 사회적 후생을 높이는 진정한 '실력'을 보여줄 때다. 1~2년 이내에 대안 데이터가 다시 한번 핵심으로 자리한다면 대안 데이터는 더 이상 신기루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