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LCC 주문 쇄도에 3년 만에 수주 나선 韓 조선사들...공급망 재편에 석유 프로젝트 활발
2024-03-06 05:00
국내 조선3사(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가 3년 만에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수주에 나섰다.
주요 산유국 중 하나인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주요국의 제재, 중동 무력충돌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가 세계적인 에너지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지면서 VLCC 발주가 쇄도하고 있다. VLCC 수주를 독점했던 중국 조선사들의 독(Dock)이 가득차면서 한국으로도 발주가 넘어오는 상황이다.
5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글로벌 VLCC 발주 건수는 19척으로 지난해 전체 주문량인 18척을 넘어섰다.
이 중 4척은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이 각각 2척씩 수주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이 2021년 3월 VLCC를 수주한 이후 3년 만에 이뤄진 VLCC 수주건이다.
글로벌 VLCC 발주 증가는 신규 석유 개발 프로젝트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과 주요국이 러시아산 석유에 제재를 가하면서 이를 대체할 신규 공급망이 필요하게 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환경문제 등을 이유로 석유 개발에 소극적이던 영국과 유럽연합(EU)이 석유개발에 나서면서 대규모 탱크선 발주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탱크선의 경우는 개별 운송 계약으로 운용되기보다는 오로지 한 가지 목적으로만 건조되는 전용선이 대부분인 만큼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는 곧 탱크선 발주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 영국 당국은 지난해 9월 셰틀랜드 서부지역의 연산 3억 배럴 규모의 석유 개발 프로젝트를 승인했으며, 북해 해양 석유 개발 승인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프랑스의 거대 에너지 기업 토털에너지(TotalEnergies) 역시 수리남에서 연산 7억 배럴 규모의 석유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세계적인 탄소중립 기조에도 정유공장 프로젝트까지 활발하다. 오만 두쿰(Duqm) 지역에서는 중국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하루 23만 배럴 규모의 정유공장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새로운 원유 공급망을 찾는 국가와 기업이 늘어난 만큼 올해 VLCC 수주는 역대 최대 수준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지난해까지 중국이 저가공세로 VLCC를 독점했지만 배를 건조할 독이 가득 차면서 선사들은 국내 조선사로 눈을 돌리는 상황이다. 최근까지 수익성을 이유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만을 선별 수주했던 국내 조선사들의 입장에서는 VLCC 신조 가격도 인상된 만큼 수주를 거부할 이유가 사라졌다.
VLCC의 신조 가격은 3년 전과 비교해 50% 이상 증가했으며, 올해 들어서도 지난해와 비교해 10%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15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는 게 해운업계의 설명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저가 수주로 인해 조선업계가 한번 무너졌던 만큼 그동안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를 해왔다"며 "현재도 3년 치 수준의 일감이 쌓여있어 VLCC가 급하지는 않다. 다만 최근 VLCC의 선가가 오르면서 수익성도 개선돼 지난해 목표 수주액을 채우지 못한 조선사들에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VLCC 발주가 과도하게 나타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OPEC의 감산체제가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중동의 원유 생산국들이 수출을 줄이고 있으면서 자칫 탱크선 공급 과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VLCC 발주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신조가격 급락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조선사들의 올해 수주가 VLCC에 집중된다면 선박 가격 하락 국면과 원자재 가격상승 국면이 겹쳐 자칫 배를 만들고도 손해가 생길 수 있는 상황도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