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서울의봄' vs '건국전쟁 …영화마저 진영 싸움의 수단으로
2024-02-14 06:00
최근 정치적 소재를 다룬 역사 영화들이 잇따라 상영되어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봄;은 개봉 65일 만에 13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부각한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은 개봉 11일 만에 12만 관객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3위에 올라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재조명한 민환기 감독의 '길위에 김대중'은 개봉 두 달 동안 12만명의 관객을 기록했다.
세 영화는 제작자들의 정치적 성향과 관객층이 다르다는 점에서 서로 간에 흥행 경쟁이 벌어지는 모습이다. '서울의봄'은 1979년 신군부세력의 12·12 군사반란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당시의 분노를 떠올리게 만들고, 그 역사를 모르던 젊은 세대에게는 우리 현대사에 그런 기가 막힌 흑역사가 있었음을 알게 해주고 있다. 군내 사조직 인맥을 총동원하여 최전선을 지키는 전방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여 군사반란을 결행한 전두광 세력, 이를 진압하려던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등의 진압군 사이에 있었던 일촉즉발의 상황들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이기에 사실과는 다른 허구나 과장들이 군데군데 들어가 있고 전두광들을 희화화한 면은 있지만, 대체적인 줄거리는 당시 12월 12일 밤의 역사와 부합한다.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진과 영상 자료, 며느리 조혜자 여사를 포함한 주변 인물과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그동안 이 전 대통령과 관련하여 왜곡되었던 부정적 평가들을 반박한다. 과거 우리 정치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역사에는 단일한 해석만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다양한 해석들이 비교되면서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나가면서 전체를 복원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역사 영화들이 상영되면서 나타나는 광경은 그런 상호보완의 기능보다는 영화를 통한 또 하나의 이념전쟁을 벌이는 모습으로 가고 있다.
'서울의봄'을 본 관객들은 현 보수정당세력을 전두광의 후예들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세력을 법정에 세웠던 것은 보수정당의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고, 현재의 집권세력 내부에 12·12와 관련된 인물은 더 이상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 선동에 가까운 주장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서로가 하는 소리도 정반대 의미지만 닮은 꼴이다. “왜곡된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꼭 보고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좌우의 양대 이념층에게는 그동안 왜곡되었던 역사의 부분이 서로 정반대로 다르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를 통해 역사를 배우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생각할 일이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기까지 영화의 정치화라는 여러 사례들이 있다. 현재의 야권 지지층은 2017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역정을 담은 '노무현입니다' 2023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를 담은 '문재인입니다'를 제작해서 상영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공’은 있지만 ‘과’는 없는 찬양 일색의 영화들이다. 2022년에는 ‘조국 사태’를 담은 '그대가 조국'이 개봉됐는데, 조국 전 장관은 오직 박해받은 피해자일 뿐 그의 과오들은 지적되지 않았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비위를 부정하고 2차 가해의 내용을 담은 일명 '박원순 다큐'는 상영을 시도하다가 법원에 의해 상영 금지 처분이 내려지기도 했다.
좌든 우든, 자기 진영의 정치적 인물을 영화로 만들 경우 하나같이 영웅화하기에 바빴다. 정치인 관련 영화는 아니지만 ‘세월호 음모론’을 다룬 김지영 감독의 '그날 바다'가 2018년에, 대선 부정개표 의혹을 다룬 최진성 감독의 '더플랜'이 2017년에 상영되기도 했다.
이들 영화는 김어준씨가 나서서 제작 비용 모금을 주도했던 경우들이다.
그동안은 주로 진보 진영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이번에는 보수 진영에서 '건국전쟁'을 만들어 ‘우파의 문화전쟁’에 나선 셈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역사해석의 영화들이 자유롭게 나와 경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떤 해석이 옳은가에 대한 판단은 결국 시장에 있는 관객들의 몫이다. 다만 문화는 자유다. 집단 속에서 이루지 못한 개인의 꿈과 아픔과 희망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것이 문화의 영역이다.
그래서 정치는 우리를 구속하지만 문화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문화가 정치와 이념에 갇히면 자유라는 생명력을 잃고 사망하게 됨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적으로 진영 대결이 전쟁처럼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다.
영화라는 문화마저도 좌우의 편에 따라 구분되고 갈라진다면 우리 공동체는 어디서 연결과 공유의 길을 찾을 수 있겠는가. 철학자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고 했다.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영화를 보면서까지 스스로를 좌우 가운데 어느 한 진영에 속박시키는 광경들은 인간이 만들어가야 할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