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본질보다 가십에 매몰된 한국정치
2024-01-18 15:37
신당을 만들고 있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한동훈 커피 사진 기획 의혹’을 제기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년반 전 법무부 장관으로 처음 출근하던 날 손에 들고 있던 던킨 커피가 누군가에 의해 조언받아 기획된 것이란 얘기였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5일 유튜브 채널 ‘장윤선의 취재편의점’에 출연해 “타워팰리스에 사는 한 위원장이 과천 법무부까지 출근하는데 던킨 도넛 커피를 들고 갔다”며 “제가 그래서 타워팰리스에서 과천까지 던킨 도넛을 검색해봤는데 살 수 있는 동선이 있질 않았던 거 같다”고 말했다. “저는 이게 우연의 일치라고 보고 싶지만 한 위원장은 아무리 봐도 누구한테 조언을 받는 느낌이 든다. 아니면 조언을 받거나 그런 스타일 잡아주는 사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그런게...”라며 “던킨은 드라이브스루가 없다. 과연 관용차를 타고 출근하다가 던킨에 내려서 다시 관용차에 타셨을까 아니면 운전사한테 사오라고 시켰을까”라고 이 전 대표는 의심 가득한 질문을 던졌다. 영상에는 한 위원장이 던킨 도넛과 커피를 들고 과천 정부청사에 출근하는 사진이 함께 올라왔다.
그러나 이 전 대표가 제기한 한동훈 커피 사진 의혹은 곧 사실무근으로 판명났다. 한 장관 지지자들이 팩트 체크에 들어가서 그날 한 장관은 집이 아닌 광주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가 서울역 역사를 거쳐 법무부 청사로 출근했음을 확인했다. 서울역 역사에도 같은 이름의 도넛 매장이 있다. 법무부 관계자도 “그날 한 장관은 서울역 매장에서 커피를 샀다”며 “그날만 아니라 지방 출장 때 던킨 매장을 자주 이용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 위원장은 그날 오전 광주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법무부 청사로 출근했다. 논란의 커피 출근 사진은 이때 찍힌 것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2008년 한 위원장이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롯데자이언츠 응원을 상징하는 주황색 봉지를 머리에 쓴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대변인이 나서서 이 같은 국민의힘 해명에 대해 반박했다. "공개된 사진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에 찍힌 사진으로, 한 위원장이 직관을 했다던 '좌천된 시기'와는 12년이나 차이나는 과거 사진"이라고 지적했다. ‘정말 부산을 위한다면 부산시민을 속일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민주당의 비판이었다. 한동훈 위원장이 부산으로 좌천됐을 때 야구장 응원을 갔느냐 아니냐가 정치적 쟁점이 되는 광경이었다.
물론 정치인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설혹 사소한 일이라도 거짓말을 했다면 지적받을 일이다. 하지만 개인의 일상을 스토커처럼 추적하고 파헤치려는 광경이 반복되는 것은 그 이상으로 거북하다. 한동훈이 손에 든 커피가 어디서 산 것이냐, 한동훈이 사직 야구장 응원을 갔느냐 여부에 대한 논쟁이 대체 어떤 공공적 의미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물론 권력과 그 주변은 언제나 감시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다. 잘못이 있다면 지적하고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본령에서 벗어나 개인들에 대한 스토커처럼 비치면 정치는 희화화 되고 만다. 정치가 이렇게 시시콜콜한 가십성 논란 거리에 매달리는 이유는 사안의 경중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자극적인 소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것에 공적인 의미가 없다 해도 대중의 호기심과 분노를 자극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정치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가 이런 소재에 매달리는 사이 정작 다루어야 할 공적인 담론들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나라와 정치의 미래를 고민해야 할 자리에 ‘커피 사진’과 ‘야구장 사진’ ‘조명과 강아지’ 논란 같은 것들이 들어서니 정작 정치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 결코 적지 않은 시절이다. 그런데 타워팰리스에서 과천까지 가는 길에 있는 던킨 도넛 매장을 일일이 검색하고 있는 정치는 대체 무엇을 하려는 정치인지 잘 모르겠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