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돋보기] "연두색 번호판 싫어요"…작년 말 법인차 판매 급증한 이유
2024-02-07 05:00
대당 수억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수입차 브랜드들이 지난해 말 역대급 판매를 기록했다. 올해부터 법인이 8000만원 이상인 차량을 업무용으로 새로 구매·리스·렌털하는 경우 기존 흰색이 아닌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 시행을 앞두고 법인차 구매 러시가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부착 제도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으로, 고가 법인차의 사적 사용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연두색 번호판을 단 고가 법인차로 골프장이나 유흥가 등 여가 시설을 가기 어렵다는 시선이 존재하는 만큼 올해 고가 승용차 시장은 전년보다 축소될 수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6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 1억원 이상 수입차 판매량은 7만8208대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2020년 4만3158대에서 2021년 6만5148대, 2022년 7만1899대 등 매년 판매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반면 지난해 수입차 전체 판매 대수는 27만1034대로 전년(28만3435대) 대비 4.4% 감소했다. 이로 인해 1억원 이상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8.9%까지 치솟았다. 판매된 수입차 3대 중 1대가 1억원이 넘는 차량이라는 뜻이다.
이는 올해부터 연두색 번호판 부착제도가 시행되면서 이를 앞두고 고가 법인차량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몰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해 판매된 1억원 이상 수입차 중 법인차량은 5만1083대로 전체의 65.3%를 차지했다. 제도 시행을 코앞에 둔 지난해 12월엔 1억5000만원 이상 수입차 월간 판매량이 4095대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부터 법인차량은 연두색 번호판을 달게 되지만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제도 시행에 앞서 법인차 구매 러시가 발생한 셈이다.
지난해 1억원 이상 수입차 판매량 1위를 달성한 브랜드는 3만2789대를 판매한 메르세데스 벤츠가 차지했다. 벤츠의 고급 브랜드 마이바흐는 2596대의 역대 최대 판매량을 달성했고, G클래스(G바겐)도 2169대로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이어 BMW(2만2890대), 포르쉐(1만1355대), 랜드로버(4334대), 아우디(2932대), 벤틀리(810대) 순으로 많이 팔렸다.
특히 포르쉐는 한국 진출 후 첫 1만대 이상 판매량을 기록했다. 포르쉐는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1만1355대를 팔았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6.69% 급증한 것으로 사상 처음 '1만대 클럽'에 들었다. 베스트 셀링모델 카이엔(4820대)을 비롯해 파나메라(1818대), 타이칸(1805대) 등이 많이 팔렸다.
벤틀리모터스·람보르기니·롤스로이스 등 초고가 브랜드들도 모두 전년 대비 판매가 늘었다. 벤틀리는 지난해 한국에서 810대를 판매하며 3년 연속 최대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차종별 판매량은 플라잉스퍼 349대, 벤테이가 203대, 컨티넨탈 GT 258대다. 람보르기니는 6.95% 늘어난 431대, 롤스로이스도 17.95% 증가한 276대를 팔았다. 모두 역대 최대 판매기록이다.
이 같은 인기는 중고차 시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억원 이상 차량의 판매 대수는 약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억원 이상 수입차는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G클래스·CLS클래스, 포르쉐 718 박스터와 카이엔 5개 모델이다. 최근 럭셔리카 신차 시장이 커지면서 중고차 시장에서도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수입 고가차의 경우 한정된 물량으로 신차 출고 대기 기간이 길기 때문에 중고차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수입차업계는 고가 수입차 판매 고공행진이 올해는 다소 수그러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두색 번호판 부착으로 사적 유용이 어려워지고,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효과가 떨어져 법인구매 방식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서다.
하지만 기존의 차량과는 다른 나만의 차량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고, 제네시스 등 고급 국산차 모델의 가격이 높아진 반면 수입차 업계가 리스나 할부 프로그램 등을 선보이며 럭셔리카의 구매 문턱을 낮추고 있어 럭셔리카 열풍이 지속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