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산업계는 '트럼프 포비아'...'중국산 아웃·보조금 철폐' 공약에 긴장
2024-02-02 05:00
트럼프, 중국산 60% 관세 시사...국내 소부장 타격
美공장 건설 등 48조 투자한 대기업도
보조금 철폐땐 투자 무용지물 될 수도
美공장 건설 등 48조 투자한 대기업도
보조금 철폐땐 투자 무용지물 될 수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재집권하면 중국에 대한 제재를 지금보다 더 강도 높게 진행할 것임을 측근들에게 시사했다. 중국산 제품에 최대 60%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인데, 현실화한다면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시에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친환경 보조금 철회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IRA 등 보조금 제도를 위해 약 50조원을 미국에 투자한 국내 기업들로서는 트럼프 정권 출범이 막대한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 트럼프 전 대통령 중국산 제품에 60% 일괄관세 시사···韓 소부장 타격 우려
1일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과 개최한 비공개회의에서 자신이 재집권하면 중국산 수입품에 60% 균일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같은 무역 제재는 ‘무역법 제301조’를 통해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1974년 제정된 무역법 301조는 특정 수입품목이 미국 무역을 저해하거나 국가 내 공정거래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면 대통령 권한으로 반덤핑 관세 부과 등 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집권했던 2017년 이 법을 통해 중국산 철강제품 등에 최대 25%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평균 관세율은 12%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세율을 60%로 일괄 상향한다는 방침인데, 사실상 중국산 제품에 대해 미국 진출을 가로막는 법이라고 업계에서는 말한다.
문제는 이 같은 조치가 국내 소부장 기업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량이 감소하면 관련 소부장 업계의 대중국 수출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국내 기업의 대중국 수출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
실제 미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장벽은 국내 소부장 기업의 대중국 수출 감소로 이어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소부장 업계는 글로벌 경기침체, 중국의 소부장 자급화로 인한 수출 감소의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미국의 중국제재도 대중국 수출 감소의 배경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미국의 반도체특별법(칩스법)과 IRA 등 영향으로 중국의 배터리, 태양광 모듈, 반도체 등 제품의 대미 수출은 중단되다시피 한 상황이다. 이 기간 관련 국내 소부장 기업의 대중국 수출도 급격히 감소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소부장 기업의 대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1% 감소했다.
정밀기기부품 수출량도 31.4% 줄었으며, 1차 금속제품과 비금속광물제품 수출도 각각 20%, 8.2% 줄었다. 대중국 수출 비중이 56.1%에 달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 기업의 대중국 수출은 31.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업계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관세가 60%로 높아진다면 현재 제재 대상인 반도체, 배터리, 태양광, 철강을 넘어 전 소부장 분야 수출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소부장 산업계 전체로 본다면 수출량이 2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업계는 관측한다.
◆IRA·칩스법 철폐 전망도···韓 대기업 50조 투자 무용지물 되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IRA 등 보조금 제도 철폐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중소·중견 소부장 기업뿐 아니라 미국에 조 단위 투자를 진행한 국내 대기업들도 긴장하는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는 ‘공화당과 트럼프의 통상 분야 공약 주요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이) IRA 등 녹색 보조금 철회도 고려하고 있어 IRA 발효 후 미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한국 기업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반도체, 배터리, 완성차 업계가 미국의 보조금 제도 대응을 위해 현지에 투입한 투자금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47조6800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배터리 시황 악화에도 분기당 약 250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 혜택을 받아 실적 개선이 가능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미국 칩스법 대응에 각각 22조8000억원과 1조3000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보조금 제도가 철폐된다면 회사채까지 동원한 미국 투자금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보조금을 안 주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기업으로서는 굉장히 우려할 만한 일”이라면서 “공화당 정부는 민주당 정부와 달리 대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실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미국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를 객관적으로 보여 주면서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