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北이 南을 대한민국이라 부르기 시작한 이유
2024-02-02 05:00
최근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남한의 국호인 ‘대한민국’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남한과의 관계를 ‘적대적이며 교전중’인 관계로 규정했다. 더 나아가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밝히면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등을 폐지했다. 또한, 평양의 남쪽 관문에 서 있는 ‘조국통일3대헌장’도 ‘꼴사나운’ 모습으로 평가해 철거할 것을 주문했다. 남한에 대한 반감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남북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북한의 의도는 무엇일까? “하나의 조선”을 지향해 온 북한이 이제부터는 명실공히 남한과 북한, 두 정식 주권국가 체제로 가져가겠다는 것인가?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바와 같이 남북한이 나라와 나라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를 저버리면서 뜬금없이 정식 국호를 사용하는 북한의 저의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해석은 분분하나, 들여다보면 ‘남북한 간 체제 경쟁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과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북한이 남북관계를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 가져가면 체제 경쟁에 자신감을 가지고 내부 붕괴를 방지해 흡수통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인가? 혹자는 옛 동서독 관계에서 구동독이 견지했던 독과의 관계를 들어 북한의 대남 관계 변화를 빗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친 해석이다. 동서독과 남북관계에 주어진 상황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동서독 분단 후 서독은 동독을 정식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할슈타인 독트린(Hallstein Doctrine)을 통해 동독은 물론, 동독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국가(구소련 제외)와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동시에 서독만이 독일 내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내세웠다. 동독은 서독의 유일 합법 정부 정책에 반발, 울브리히트 독트린(Ulbricht Doctrine)을 천명했다. 동독과 서독의 외교 관계는 두 국가가 각자의 주권을 인정할 때 성립할 수 있음을 주장한 원칙이다. 서독만이 합법적인 국가라고 주장하던 서독의 “할슈타인 독트린”에 정면 대응한 정책이었다. 그러면서 동독은 서독과는 민족도 다르다는 점까지 부각하면서 대서독 관계에서는 물론, 대외적 관계에서 독립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성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주변 국가로부터 정당한 국가로서의 대우, 서독과 동등한 대접을 받기 위함이었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등은 서독이 동독의 주권을 인정할 때까지 관계 정상화를 하지 않겠다는 동독을 지지했다. 그러나 서독의 대동독 불인정은 1970년대에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추진에 따라 무력화한다. 서독이 먼저 동독을 인정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의 남한 국호 사용은 남한으로부터 국가로 인정받기 위함일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민족임을 거부하기 위해서다. 통일에 대한 일말의 고려마저 차단하겠다는 행위다. 극도의 반감과 냉혹한 단절의 표출일 가능성이 크다. 남한을 더는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나 동족이라는 차원에서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언급처럼 이제부터는 남한을 오로지 원수로, 적으로, 전쟁 당사국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구동독과 같이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것과도 관련이 없다. 북한은 비핵화의 거부로 국제사회로부터 이미 따돌림을 받은 국가나 마찬가지다. 각종 제재에 직면한 상황에서 북한이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그런 처신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대한민국 국호의 호칭에 남한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북한이 대한민국의 국호를 사용하는 것을 거부해야 할까? 아니면 북한이 남한의 국호를 사용하는 것을 정식국가로 대우해 주는 것으로 보고 환영해야 할까?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과 제4조의 통일조항을 들어 그 어떤 경우라도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가서는 안 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과연 그렇게 해야만 할까? 북한이 우리의 국호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어떡할 수 없는 노릇이다. 헌법은 그대로 둔다고 해도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일이다. 구서독이 대동독을 향해 갔던 길이 지금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이다. 서독은 독일통일 시까지 법적으로는 동독을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로 인정했다. 민족까지 다르다고 선언한 동독을 인정하고, 통일로까지 가져갈 수 있었던 바탕에는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이 있었다. 서독은 이를 적대적 관계 속에서도, 정권의 바뀜에서도 변함없이 지켜나갔다. 동독과 부단히 협상했다. 무역을 확대하고, 동유럽 국가와 무력불행사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우리의 통일부와 같은 ‘전독성’을 교류협력부인 ‘내독성’으로 그 명칭마저 바꿨다. 힘을 앞세운 정책에서 협력을 앞세운 정책을 선택했다. 1972년 12월 체결한 「동서독기본조약」을 통해 각 분야의 교류협력을 규정하고 실천해 나갔다. 유럽국가들에게는 국경선 불가침과 영토보전, 무력의 위협이나 사용의 포기를 선언했다. 본 조약에 바탕한 동서독 사이의 수많은 협정과 협력은 동독 주민의 마음을 얻는 데 충분했다. 이전의 동독이 없어지는 데 대한 동독 주민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부유하고 건강한 서독 사회의 실체가 마침내 동독 주민으로 하여금 스스로 서독체제로의 편입을 요구하는 통일로 이어지게 했던 것이다.
우리의 대북 압박 일변도 정책은 바뀌어야만 한다. 대결로만 치닫는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적대적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핵 문제 해결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남북은 물론, 국제사회가 그에 걸맞은 분위기를 먼저 창출해야 한다. 핵과 미사일을 동반한 사상 유례없는 과도한 군사훈련이 접경지대에서 펼쳐지는 환경도 바꾸어야 한다. 작금 한반도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심상치 않다. 갑자기 높아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한국 증시를 찬바람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국에 대한 투자에도 엄청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외국의 전문가들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한반도의 긴장 분위기를 염려하고 있다. 윤 정부의 대북한 ‘압도적 힘’과 힘의 사용은 남북관계가 가야 할 방향이 아니다.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가 평화를 담보할 것이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평화’에는 목표가 담겨야 한다. 남북관계가 도달해야 할 비전을 담아야 한다. ‘힘’만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우리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힘’이 북한의 도발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힘’은 ‘힘’을 부르기 마련이다. 정말 ‘힘’있는 자는 ‘힘’자랑을 하지 않음을 윤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