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한반도 평화 구축…'압도적인 힘'외 대안없나

2024-01-03 05:08

[김영윤 대표]


윤 정부 집권 3년째다.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가 올해에는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을까? 남북관계는 통상 국제정세를 포함, 주변국의 대한반도 정책, 남한과 북한의 상대방에 대한 정책 등에 큰 영향을 받는다. 우리에게는 북·미관계가 남북관계를 움직이는 핵심요건이 되어 있다. 주권국가로서 부끄럽고 체면을 구기는 일이지만 자의든 타의든 현재로서는 그런 환경과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를 타개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변화를 가하고 이끄는 의지와 힘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11월 대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 한반도의 정세와 남북관계에 중대 변화가 올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 그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새 정부가 출범하는 2025년 초 이후다. 그러니 2024년 올해는 미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 유효할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말에 대북한 정책을 바꿀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구나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 기존의 대북정책이나 미·북 관계를 바꾸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정책이 대통령 개인의 선호가 아닌,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한 정책은 무엇인가? 이는 지난해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워싱턴선언’(2023.4.26.)에 잘 담겨있다. 핵심은 ‘핵에는 핵으로 대응’이다. 일명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확장억제에 따른 미국 전략자산의 빈번한 한반도 출동도 이에 바탕을 두고 있다. 2022년에 5회였던 전략자산의 전개는 지난해 17회로 늘어났다. 군사밀집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 한반도에 미국은 세계 최대 해외군사기지를 두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상대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투발 수단으로 대치하고 있다. 군사적 대치의 강도는 훨씬 높아졌지만 이를 억제할 제도적 장치는 없다.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우발적 충돌이나 갈등을 전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의지가 잉태해 있는 곳이 한반도다. 여기에다 한국의 독자적 외교나 대북정책 추진은 극히 제한적이다. 한·미동맹은 ‘전 지구적 전략동맹’으로, 한국의 외교는 미국의 ‘신냉전 구도’에 편입되어 ‘미국의 외교’로 탈바꿈해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최근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9차 전원회의(23.12.26~30)를 통해 남북관계를 재정립했다. 남한을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국가, 전쟁 당사자의 관계로 천명하면서 한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 전 영토를 평정하려는 군사행동에 보조를 맞추어나가기 위한 준비”를 해나갈 것을 강조했다. 미국에 대해서도 강대강, 정면승부의 원칙을 확고히 했다. 지속적인 핵무기 생산은 불문가지다. 이미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9차 회의에서 김정은은 “핵무기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핵타격 수단들의 다종화를 실현하여 실전 배치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3개의 정찰위성도 추가 발사할 예정이다. 아직 먹는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북한이 핵무력 증강에는 죽기살기식이다. 한국 정부에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에서부터 “미국의 충견”까지 원색적 비난으로만 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은 같은 민족으로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혹시라도 한반도 상황에 변화가 온다고 해도 윤 정부를 철저히 무시한 채, 미국하고만 맞상대할 태세다. 이런 점에서 북한으로부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이다.
 
현재 한반도는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미국의 강화된 확장억제가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에 놓여있다. 안보 불안으로 군사력을 높이는 행위가 상대를 자극해 더 큰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한다. 북한을 '압도하는 힘'만으로 작금의 안보 딜레마를 끊을 수 없다. 한국이 친미를 국가 전략으로 선택하고 있지만, 어느 한구석이라도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여지를 찾아야 한다.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서도 그 틈새를 찾는 것이다. 안보를 튼튼히 하겠다는 것을 누가 탓하겠는가? 그러나 언제까지 대북한 ‘압도적 힘’의 안보에만 기댈 수는 없지 않은가. 작은 남북교류협력이라도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부가 말하는 ‘원칙이 있는 남북관계’의 정립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아무 실효성 없는 일만 되풀이하는 것에는 반대다. 물론,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강하게 비판하고 압도적 응징을 말하지만, 그 대응은 제한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직접적 대응이 아닌 우회적인 대응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 현재의 남북관계를 긍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일도 병행하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북한 사이에 끊어진 통신선부터 연결하는 것이다. 현재 남북한 사이에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서로 소통할 방법이 없다. ‘유엔사나 국제상선통신망’을 통해야 한다. 이를 원상 복구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정부가 민간교류협력을 차단하고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남북교류협력법>을 바꾸려는 것을 재고하는 것이다. 별 실효성 없는 사업을 정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2024년 대북한 인권증진 과제에는 “북한 인권 실태조사 체계화 및 실효적 책임규명,”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 강화,”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 실질적 개선” 등이 있다. 이런 사업이 과연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추진하는 만큼 대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차라리 남북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고, 금강산이나 백두산 관광교류를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정부는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20.6.16) 책임을 물어 447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폭파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에 대한 철거 작업을 하는 것을 들어 “우리의 재산권을 지속적으로 침해”하고 있으니 즉각 중단할 것도 촉구한 바 있다.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은 이해되나 누가 봐도 실효성은 없다. 윤 정부가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북한 ‘공산 전체주의가 실패’했음을 우리 국민 중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 실패하고 허약한 체제를 계속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인지 묻고 싶다. “진정한 평화는 압도적인 힘과 그러한 힘을 사용할 것이라는 단호한 의지에 의해서 구축되는 것”이라는 말도 한두 번이면 족하다. 북한을 위협하는 말의 반복이 국민의 불안을 가중하는 것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가 말이다. 2024년에는 제발 암울한 남북관계가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는 윤 정부의 전략적 사고를 기대한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