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8) 영문도 모르고 따라 짖다 - 폐형폐성(吠形吠聲)
2024-01-29 15:40
수년 전 늦깎이 블로거가 됐다. 그 소식을 들은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유튜브를 하라고. 그래야 돈이 된다고. 너도나도 유튜브 제작에 뛰어드는 이유를 이보다 더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말은 없을 듯하다.
국민 열에 일고여덟은 유튜브를 만들거나 본다. 동영상 서비스 이용률은 유튜브가 98.8%로 압도적 1위다. 유튜브를 통한 뉴스 시청률 또한 갈수록 높아져 지난해 기준 53%에 달한다. 최근 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직업별 신뢰도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중고생들은 정치인보다 유튜버를 더 신뢰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초등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바야흐로 유튜브 전성시대다. 하지만 세상만사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유튜브로 인한 폐해도 이점 못지않게 크다. 두 주일 전 중앙일보 주말판은 정치양극화와 증오의 온상이 되어 한국 정치의 판을 흔드는 정치 유튜브의 실상을 세 면에 걸쳐 심층 분석했다.
정치 유튜버는 광팬을 모아 정치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신종 신념 산업' 종사자들이다. 진영으로 갈라진 정치 유튜버들은 정치적 사건 현장마다 떼로 몰려가 자극적 소재와 막말을 쏟아내며 팬덤 몰이를 한다. 이들에게 근거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필요하면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수익도 따라 올라가기 때문이다. 역시 진영으로 갈라진 극렬 팬덤은 유튜버가 전하는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사방팔방으로 전파한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툭 던져진 한마디는 순식간에 알고리즘을 타고 다른 유튜브 채널에서 사실로 둔갑해 재생된다. 증오와 혐오의 정치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된다고 기사는 전한다.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모든 개가 따라 짖는다. 한 사람이 헛된 말을 퍼뜨리면 많은 사람들이 사실인 양 떠들어댄다. (諺日, 一犬吠形 百犬吠聲, 一人傳虛 萬人傳實)." '잠부론' 다섯번째 글 '현난賢難'편에 나오는 말이다. 일견폐형이니 백견폐성이라, 여기에서 '폐형폐성(吠形吠聲)'이란 성어가 유래했다. 짖을 폐(吠)에 형체 형(形), 소리 성(聲)으로 이루어진 성어 '폐형폐성'은 사람의 행태를 개의 습성에 비유한 통렬한 세태 비판이다.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줏대 없이 남의 장단에 춤추는 것을 이르니 '부화뇌동'과도 뜻이 통한다.
왕부가 폐형폐성하는 개의 습성에 빗대어 인간의 행태를 비판했지만, 요즘 개의 처지는 그가 살던 세상과 사뭇 다르다. 한동안 애완견으로 불리던 견공들의 위상은 반려견으로 한층 더 격상되었다. 출산을 꺼리는 젊은세대는 개를 마치 자기가 낳은 아기 돌보듯 한다. 거리에서는 유모차보다도 견모차(犬母車)가 더 자주 눈에 띈다. 지난 1월 9일 '개 식용 금지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된 것이 달라진 세태를 웅변한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다.
새해 벽두부터 3주 간격으로 정치인들을 겨냥한 테러가 발생했다. 체포된 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고 유튜브 등 온라인 영상물을 많이 시청했다고 전해진다. 정치 유튜버들이 기름을 붓고 부채질한 '정치 혐오'가 병리적으로 분출하는 신호탄이 아닐까 우려된다. 언론인 듯 언론 아닌 듯 모호한 경계선에서 제재 없이 폭주하며 팬덤몰이하고 있는 정치 유튜버들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시급해 보인다. 주인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는 개들은 이제 떼 지어 짖을 일도 없는데 인간들만 여전히 폐형폐성한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