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7) 무능한 자가 자리를 탐하다 - 남우충수(濫竽充數)

2024-01-15 20:04

[유재혁 에세이스트]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뽑은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 1위는 본고 6회차에서 소개한 ‘견리망의(見利忘義)’였다. 그에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게 3위를 차지한 ‘남우충수’다.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남우충수는 무슨 뜻을 가진 성어일까? 많은 교수들이 추천한 함의는 또 무엇일까?

넘칠 '람濫'에 피리 '우竽', 찰 '충充', 셈 '수數'로 이루어진 성어 '남우충수(濫竽充數)’는 피리를 불 줄도 모르는 가짜 악사로 악단의 머릿수를 채우는 행위를 이른다. 아울러 능력이 없는 자가 능력이 있는 것처럼 과장하거나 높은 자리를 욕심내는 세태를 풍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B.C 403~B.C 221) 제나라 선왕(宣王)이 우(竽)* 연주 듣는 것을 좋아해서 삼백 명이 합주하는 악대(樂隊)를 만들었다. 남곽이라는 한량이 온갖 수단을 쓴 끝에 왕의 환심을 얻어 악대에 자리 하나를 꿰차고 앉았다. 남곽은 우를 불 줄 몰랐지만 다른 악사들이 열심히 연주할 때마다 시치미를 떼고 우를 부는 척했다. 악대의 인원이 많은데다가 남곽의 모습이 워낙 그럴 듯해서 아무도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몇년이 흐르는 동안 남곽은 추호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고 녹봉을 두둑히 챙긴 것은 물론이고 다른 악사들과 함께 상도 받았다.

선왕이 죽고 아들 민왕(湣王)이 즉위했다. 그 또한 우 연주 듣는 걸 좋아했지만, 합주를 좋아하던 선왕과 달리 악사들이 한 명씩 독주하는 것을 즐겼다. 남곽이 그 소식을 듣고는 마각이 드러날까봐 간담을 졸이다가 서둘러 짐을 꾸려 야반도주했다. 

'실력도 없이 자리를 차지한다'는 '남우충수濫竽充數'가 탄생한 배경이다.  출전은 《한비자 내저설상 칠술편 韓非子•內儲說上 七術篇》. 칠술(七術)은 임금이 신하를 다스리는 7가지 용인술로 그 한 예로 든 것이 위에서 소개한 이야기이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 세월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었던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내가 다닌 서울 동작구 소재 S중학교는 6•25 때 큰 전공을 세운 군 원로가 설립해서인지 상무의 전통이 살아 있었다. 재학생은 의무적으로 유도와 검도 중 하나를 선택해서 교습을 받아야 했다. 주한미군과의 관계도 돈독했다. 해마다 가을이면 태평로에 위치한 시민회관(세종문화회관의 전신. 지금 서울시의회 자리에 있었다.)에서 합동으로 친선음악회를 열 정도였으니 말이다. 음악회날 S고등학교 밴드부는 미8군 브라스밴드와 합주를 하고 중학교는 합창을 맡았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미8군과의 친선음악회를 앞둔 반별 경연에서 1등을 한 우리반이 학교대표로 합창을 하게 되었다. 음악회 때 부를 노래를 연습시키던 음악선생님이 하루는 한명 한명 앞으로 나오게 하여 독창을 시키더니 두세 명을 지목하고 특단의 지시를 내렸다. 소리는 내지 말고 입만 벙긋하라고. 너희들은 음정과 박자가 안 맞으니 립싱크를 하라는 얘기였다. 이를테면 '남곽'이 되라는 주문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한 명도 빠짐없이 무대 위에 오르게 하려 한 선생님의 배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반세기도 더 지난 일을 이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지목된 급우 중에 나도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본의아니게 남곽이 된 나와 급우들은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고 합창회는 별 탈 없이 끝났다.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이 나와 몇 급우들을 남곽으로 만든 건 음악회와 제자들을 두루 배려한 고육지책이었다. 반면에 제나라 선왕이 남곽을 악대에 집어넣은 건 전형적인 부실 인사요 낙하산 인사다. 사사로운 의리나 정에 끌려 하는 정실 인사, 낙하산 인사, 능력 검증을 소홀히 한 부실 인사는 지금도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흔히 인사가 만사라 한다. 그 요체는 적재를 적소에 배치하는 것일 게다.

남곽은 분명 악대에 적합한 인재가 아니었고 적소에 배치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비록 나라의 녹봉을 축내긴 했어도 자신의 부족함과 분수를 알고 자중자애함으로써 조직 전체, 즉 악대에 누를 끼치지는 않았다. 그릇된 인사를 통해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은 '현대판 남곽'들은 역시 그릇된 방식으로 인사권자에게 보은을 하려 들어 조직의 화근이 되고 세상이 바뀌면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우리나라 국회는 현대판 남곽의 온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자그마치 180여 개다. 군사독재시대의 유물이라 할 '불체포특권'이 대표적이다. 연봉 1억5500만원은 근로자 평균임금의 세 배가 넘는다. 9명까지 둘 수 있는 보좌진 인건비와 그외 각종 활동지원비 명목으로 지원되는 나랏돈이 연간 수억원에 달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부정한 행위로 재판을 받고 있어도 나오는 돈들이다. 특권은 과도하고 의무는 깃털처럼 가볍다. 그러니 국민의 공복이요 민의의 대변인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은 뒷전이고 정쟁과 차기 공천에만 목을 맨다. 국회의원직을 그저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무성하다. 국회의원이 비효율과 비호감 직업군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게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한비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모름지기 리더라면 인재를 발굴해 적재적소에 앉히는 것은 물론이고 남곽 같은 무능력자를 솎아내는 용인술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옛날 음악선생님이 합창의 하모니를 저해하는 학생들을 가려내 음악회를 잘 치렀듯이 말이다. 대학교수들이 남우충수를 추천한 함의 또한 그럴 것이다. 임금이 아니라 국민이 최고권력자인 시대다. 투표권 행사를 통해서 현대판 남곽들을 솎아내는 일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총선이 채 석달도 남지 않았다. 


*우(竽): 생황(笙簧)과 비슷한 피리의 일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