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의 아주경제적 시선] 시대 역행하는 징벌적 상속세 …이대로 둘건가

2024-01-25 15:21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서울지방시대위원장]



 윤 대통령은 최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이어가면서 중요한 민생관련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상속세 개편 제의는 만시지탄의 감이 있는 매우 시급한 과제다. 윤 대통령은 “과도한 세제는 결국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불이익이 있다고 해도 과감히 밀어붙이겠다”고 밝히면서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적 불이익이라는 점은 상속세 폐지 또는 완화를 주장하면 부자감세라는 포퓰리즘의 역풍을 맞을 우려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총선을 앞둔 시점에 상속세 개편 주장은 조심스러운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상속세가 너무 과도해 이제 많은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더 이상 미루기 힘든 실정이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악명이 높다. 과세 표준이 30억원을 넘을 경우 세율은 50%, 기업 경영권까지 물려받으면 10%p가 할증돼 60%로 높아진다. OECD 회원국 중 일본은 55%, 프랑스 45% 영국 미국은 40% 스페인 34% 아일랜드 33% 독일 벨기에는 30%다, 캐나다·호주 등 15개국은 상속세가 없고 상속세 원조국인 영국도 단계적 상속세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대주주라면 지분 상속 시 세금을 20% 더 매기는 제도는 한국이 유일하다. 가업 상속 공제 대상도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일부로 한정돼 있어 대기업은 외국 기업에 비해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세계적 추세에도 맞지 않는 징벌적 상속세를 이대로 두고는 기업투자 활성화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 더구나 현행 상속세율은 2000년 세법 개정 이후 그대로다. 그동안 물가나 경제규모가 엄청나게 많이 커졌는데 경제 규모나 소득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과세구간은 그대로여서 세금부담만 증가하고 있다.
 국세청의 ‘2023년 국세 통계 연보’에서는 2022년 피상속인 34만8519명이 남긴 재산 96조506억원 중 상속인들이 부담해야 할 결정세액은 19조2603억원인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2022년의 경우 삼성전자 오너 일가의 상속세 결정세액 12조원을 빼면 전체 규모는 작아진다. 문제는 이를 감안해도 상속세 규모가 매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2조5197억원이던 상속세 결정세액은 △2019년 2조7709억원 △2020년 4조2294억원 △2021년 4조9131억원 등으로 불어났다. 2022년은 삼성의 수치를 제외해도 7조2000억원을 웃돈다. 2018년 대비 약 2.88배, 2001년과 비교할 경우 18배 많다.
 상속세 실효세율도 20.05%를 기록해 처음으로 20%를 돌파했다. 일본(55%), 프랑스(45%), 미국·영국(40%) 등도 상속세율이 높은 편이지만 공제 혜택이 커 실제로 내는 상속세율은 한국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일본은 비상장 기업의 경우 세액 80%의 납부를 유예했다가 5년 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면제해줘 실효세율은 11% 정도라는 분석이다. 프랑스의 가업 상속 실효세율도 각각 11.25% 정도고 미국에선 자녀가 부모로부터 2340만 달러(약 306억원)까지 세금 없이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의 총조세 대비 비율도 선진국 가운데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국회예산정책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로 분석한 한국의 총조세 대비 상속·증여세 부담률은 2.4%(2021년 기준)로 나타났다. 이는 주요 7개국(G7) 평균(0.6%)에 비해 네 배나 많은 것이다. 10년 사이 증가폭도 한국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부담률은 2011년 1.0%에서 1.4%포인트 증가했다. G7의 평균 증가폭 0.2%에 비해 일곱 배나 많다. 한국의 상속·증여세가 최근 들어 얼마나 빠르게 과중해졌는지 보여주는 통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증여세 부담률로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의 부담률은 0.7%로 프랑스(0.7%)와 함께 공동 1위로 나타났다. 이 경우에도 10년 사이 증가폭은 0.5%포인트로, 0.3%포인트인 프랑스보다 높았다. 한국의 상속세 부담이 이처럼 큰 것은 우선 세율이 높아서다.
상속세는 기업을 부도내거나 피인수합병 당하게 해 일자리를 잃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때 상속세율이 70%에 달했던 스웨덴도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는데 제약회사 아스트라가 상속 과정에서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팔면서 주가가 폭락해 영국의 제네카에 피인수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합병된 아스트라제네카가 바로 코로나백신으로 유명해진 회사다.
 각종 반대기업 규제에다 높은 상속세 등 대기업으로 성장할 환경이 어려워 한국의 대기업 비중은 0.1%에 불과하고 중소기업의 비중은 99.9%에 달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중소기업 고용비중은 선진국의 거의 두 배 수준이며 대기업 고용비중은 10% 안팎으로 미국의 약 3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반면 청년들은 대기업의 양질 일자리를 갖고 싶어하기 때문에 청년층의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극심해 높은 청년실업의 원인이 되고 있다.
 상속세율이 세계 최고인 한국의 기업들은 상속세로 더욱 골머리를 앓고 있다. 콘돔업체 유니더스, 밀폐용기업체 락앤락, 종자업체 농우바이오, 손톱깎이업체 쓰리세븐 등 해당 분야에서 국내외 1위를 달리던 업체들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경영권을 매각했다. CJ그룹은 회장 장남 등이 보유한 올리브영 지분의 일부를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상속 재원 마련 및 승계 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한 매각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세계 이명희 회장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에게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일부 증여, 60% 증여세율을 적용받아 총 2962억원을 5년간 분할 납부하고 있다.
 2022년에는 이건희 회장의 사망으로 약 12조원의 상속세가 부과되면서 한국의 높은 상속세가 국내외에서 큰 화제가 됐다. 결국 5년 동안 6회에 걸쳐 2조원씩 나눠 내기로 하고 삼성그룹 상속인들은 계열사 지분 매각, 보유주식 담보대출, 배당 등으로 상속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LG그룹 상속인들도 90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주식담보대출 등을 통해 나눠 내고 있다. 아무리 재벌이라도 세계 최고의 한국 상속세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아예 최대주주 지위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2017년 OCI 이우현 부회장은 부친인 이수영 회장 타계로 상속세 190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지분 일부를 팔고 3대 주주로 내려앉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 유수 게임업체인 넥슨 김정주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6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상속세를 마련할 길이 없어 자녀들이 주식으로 물납한 결과 기획재정부가 넥슨그룹의 지주회사인 NXC의 29.3%를 소유한 2대 주주에 올랐다는 보도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부가 물납으로 받은 상속세 주식은 매각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실정이다. 물납주식이란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원을 초과하는데 금융재산이 납부세액에 미달할 경우 주식으로 상속세를 내는 방식이다. 상속재산 중 유가증권 가액이 2분의 1을 초과해야 요건이 성립된다. 2013년 이후 비상장주식에 주로 적용되고 있다. 21일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경쟁입찰 시스템 온비드에 따르면, 입찰가 20억원 이상 물납주식(캠코 소유 유가증권)의 경우 지난해 256건 중 낙찰된 건이 불과 3건에 불과했다. 2022년의 경우 총 324건 중 낙찰된 건이 1건도 없었다. 사실상 20억원 이상 물납주식 대다수의 매각이 유찰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물납주식으로 받은 교학사 지분(11%), 라성건설 지분(12.23%) 등을 수백억원에 팔려고 내놨지만 수차례 유찰이 된 상황이다. 국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물납주식의 평균 유찰횟수는 2020년 기준 28회에 달한다. 유찰이 될수록 입찰가격은 떨어진다. 이 때문에 2020년 매각된 건에 한했을 때 물납가액은 420억원, 매각금액은 373억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상속세를 내는 것보다 법인세를 더 내고, 일자리 특히 양질의 대기업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OECD 38개 회원국 중 15개국이 상속세를 폐지했지만 한국은 요지부동이다. 지난해 삼성그룹의 천문학적인 상속세 파장으로 개편 논의가 있을 법도 했지만 워낙 기업 반대 정서가 강한 한국에서 정치권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인 가운데 이번에 윤 대통령이 상속세 개편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대체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 2022년 9월 발주했던 ‘상속세 유산취득 과세체계 도입을 위한 법제화 방안 연구’ 용역이 다음 달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했다. 정부가 상속세 완화 방안 중 하나로 들여다보고 있는 유산취득세는 각자 상속받은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방법이다. 예컨대 현재는 100억원의 재산을 자녀 4명이 상속받는다면 100억원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 후 4명이 나눠 낸다. 하지만 유산취득세는 4명이 각각 물려받은 25억원을 기준으로 세금을 정한다.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낮아지기 때문에 상속받은 이들이 내야 하는 세금도 줄어든다.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 평균 수준인 30%로 인하하고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를 폐지하며 △과표 구간도 현행 5단계에서 3단계로 단순화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문제인 청년층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상속세를 전향적으로 전면 개편할 때다. 윤석열 대통령도 “과도한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며 개편 의지를 밝혔다. 정부는 최고세율 조정, 최대주주 할증 폐지, 상속세 분납 확대 등 구체적인 상속세 개편안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 다만 상속세 부담 축소에 따라 줄어드는 세수를 보전하기 위한 보완책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부자 감세’ 프레임에서 벗어나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상속세 수술 입법에 협조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