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OC 세부지침에 뿔난 한국 기업들…"中 광물 즉각 배제 비현실적"
2024-01-23 07:24
한국 완성차와 배터리업계가 중국산 광물을 즉각 배제하는 등 미국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대상 규정이 비현실적이라고 미국 정부에 건의했다. 흑연 등 핵심 광물의 경우 단기간에 중국을 대체할 공급망을 확보하기 어려운데 당장 2025년부터 공급선을 바꾸지 못하면 재무 부담이 가중하는 등 사업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및 LG그룹 및 국내 기업은 최근 미국 재무부와 에너지부, 국세청의 해외우려기관(FEOC) 가이던스에 대해 "핵심 광물의 공급망에서 FEOC를 즉시 제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라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각각 제출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FEOC 이행방식에 대한 의견 수렴 차원이다.
미국 정부는 작년 12월 1일 발표한 세부 규정안에서 FEOC를 사실상 중국에 있는 모든 기업으로 규정했다. 이때 이행방식도 제시했는데 IRA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배터리 부품은 올해부터,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광물은 2025년부터 FEOC에서 조달하면 안 된다고 명시했다.
이후 중국산 핵심광물에 크게 의존하는 글로벌 전기차 및 배터리 업계에 큰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고, 각사가 제출한 의견서에도 이러한 내용이 반영됐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제네시스의 GV70 전동화 모델도 한때 보조금을 받았으나 IRA 요건 강화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차종이 아예 없는 상태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의견서에서 배터리 핵심광물 가치의 10% 이하 가치를 지닌 광물에 대해서는 FEOC를 적용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이 매우 다양하고 전체 가치에서 1% 미만의 비중을 차지하는 광물도 상당수인데 모든 광물에 FEOC를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업계는 그간 현대차가 신차 효과, IRA 예외 조항 등에 힘입어 미국 판매실적을 늘려왔지만 강화된 조치로 올해는 안심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최근 현지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인하 경쟁이 심화하는 한편, 매년 강화하는 FEOC 조건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차는 미국에서 IRA 보조금을 못 받는 자사 전기차에 7500달러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는데, FEOC 요건이 완화하지 않으면 재무부담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배터리 기업은 현재의 광물 조달 계획대로라면 FEOC 이행방식을 맞추기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배터리 3사는 호주, 아프리카 등으로 흑연 공급선을 확대하고 있지만 2026년이 넘어서야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SK온은 중국산 흑연을 대체할 공급망을 구축하려면 최소 3~4년이 걸릴 것이라며 FEOC 규정 적용을 2027년 1월로 2년 유예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삼성SDI도 SK온과 같이 중국산 흑연을 대체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제조사가 원산지를 검증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 총가치의 10% 미만을 차지하는 '저가치(low-value)' 재료를 FEOC 규정에서 예외로 해 달라며 코발트·지르코늄·텅스텐·이트륨·티타늄·흑연·형석을 저가치 광물로 제시했다.
현지 생산을 위해 70조원 넘게 투자한 국내 배터리 업계는 미국 정권 교체 가능성에 따른 리스크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트럼프 2기가 출범할 경우 IRA 내 현지 생산 보조금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등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배터리 판매가격 하락, 금리 부담 지속 및 전방 수요 둔화 등이 복잡하게 얽히며 SK온은 지난해에도 흑자 전환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정부가 의견 수렴을 통해 최종안을 제시할 예정이지만 언제 나올지 몰라 사업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