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자의 食슐랭] 소비기한 지난 식품 드시나요?
2024-01-16 12:00
이달부터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전면 시행...현장선 혼선
소비기한을 아시나요?
1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유통기한 식품 표시제가 사라지고 소비기한 표시제가 본격 시행됐다. 유통기한은 음식이 만들어지고 나서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대체로 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폐기 수순을 밟는다. 부패나 변질되지 않은 제품들도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 유통기한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제품 상태를 오인하게 한다는 지적도 나오는 이유다.
유통기한으로 발생한 식량 낭비를 막고 소비자 오인을 막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 바로 소비기한 표시제다. 소비기한 표시제는 섭취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표시하는 제도다. 유통기한은 식품 품질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인 품질안전 한계기간인 60~70%로 설정하지만,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긴 80~90%로 한다. 이를 감안하면 소비기한이 지났을 시 부패, 변질 우려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소비자들이 섭취를 삼가야 한다.
가공식품의 소비기한은 더 길다. 유통기한이 45일인 과자의 소비기한은 81일로 확대된다. 막걸리(탁주)의 유통기한은 30~90일이지만, 소비기한은 46~160일이다. 커피 역시 유통기한은 45~90일인 반면 소비기한은 69~149일이다.
다만 변질되기 쉬운 우유류(냉장보관 제품에 한함)의 경우 낙농·우유업계의 요청에 따라 유예돼 2031년 1월 1일부터 소비기한이 적용된다.
소비기한 전면 적용 주저하는 식품사들...왜?
지난 1년간 계도기간을 거쳐 이달부터 소비기한 표시제가 전면 시행됐지만 여전히 현장에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계도기간 중 생산된 제품에 한해 표시된 기간까지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품 소진 시까지 소비자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다가 단순히 표기만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꾼 기업도 적지 않다. 사실상 제도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셈이다.
농심은 라면(유탕면, 건면)의 소비기한을 유통기한과 같은 6개월로 유지한다. 농심은 스낵 27종에 한해 유통기한에서 1개월 늘린 7개월을 소비기한으로 정했다. 이는 정부가 소비기한으로 제시한 것보다 짧다.
실제로 유탕면과 건면의 유통기한은 183일이지만, 식약처가 제시한 소비기한 참고값은 유탕면 207~333일, 건면 249일이다. 과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자의 유통기한은 30~183일이나, 소비기한의 참고값은 54~333일이다.
오뚜기 역시 프레스코 스파게티 소스의 소비기한을 12개월로 설정했다. 이는 기존 유통기한과 같다.
식품 제조사들이 제품 판매 기간이 더 늘어나는 소비기한 전면 적용을 주저하는 것은 품질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판매 시한을 늘렸다가 혹여라도 제품에 하자가 발생할 경우 전적으로 기업이 책임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은 소비자의 보관 상태에 따라 품질 유지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제조사가 제품 하자 등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져야 한다면 소비기한을 보수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용도 문제다. 소비기한으로 전환하려면 적절한 소비기한을 찾기 위한 연구개발(R&D)이나 포장지 교체 등을 위해 자금 투자가 필요하다. 생산하는 제품 양에 비례해 자금 투자 규모는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제각각이다. 자금 확보가 선행돼야 하는 만큼 소비기한이 중소 식품 제조사로까지 확산되려면 더욱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식약처가 작년 11월 국내 식품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하는 매출 상위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소비기한 표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소비기한 표시 전환률이 지난 2월 34.8%에서 94.2%로 상승했다. 다만 상대적으로 기업 규모가 작은 나머지 50% 업체에 대해선 현황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태다.
업계에선 소비기한 제도 취지는 공감하지만, 소비자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체 관계자는 "소비기한이 널리 확산되면 폐기되는 제제품 양이 줄 수는 있다"고 긍정 평가를 하면서도 "다만 소비기한은 안 지났지만 유통기한은 지난 식품을 먹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아직 많다. 소비자 분쟁, 비용 등을 감수하고 적극 나서 바꾸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