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으로 자취를 감췄던 중국 기업과 스타트업이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 'CES 2024'로 돌아왔다. 산업 전체를 혁신할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그 근간이 되는 반도체 원천 기술을 미국과 한국·대만 기업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민간 교류·협력이 막히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 배경이다. 이번 CES에선 미국·한국·대만 기업이 팬데믹 기간 연구한 혁신 기술과 서비스를 대거 선보이는 가운데 중국 기업들이 이를 분석하며 와신상담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7일 행사를 주관하는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에 따르면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9일(현지시간)부터 12일까지 열리는 CES에는 전 세계 4314개 기업이 참여한다. 가장 많은 기업이 참여하는 국가는 미국(1208개·28%)이다. 중국은 1114개 기업(25.8%)이 참여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중국이 CES 전체 참여 기업 가운데 3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 조치와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참여 기업이 급감해 미국과 한국에 1·2위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올해는 하이센스·TCL 필두로 중국 기업이 대거 CES에 복귀해 국가 간 분쟁과 민간 교류는 별개라는 점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CES에 중국 기업 502개가 참여한 점을 고려하면 1년 새 2배 이상 참여 기업이 늘었다. 대부분 전기차·부품 등과 관련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선전(深圳) 소재 기업들이다. 

다만, 미국의 제재로 참여가 불가능한 화웨이나 하이얼, 샤오미, 아너 등 중국 주요 IT·가전 기업은 불참했다. 대신 이들은 다음 달 미국 정부 입김이 닿지 않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행사에 참석해 신기술과 서비스를 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선 미국과 한국, 대만 기업들은 신기술 공개 장소로 CES를, 중국과 우방국 기업들은 MWC(바르셀로나·상하이)를 선호하는 현상이 점점 뚜렷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은 올해 789개 기업(18.3%)이 CES에 참여해 AI·가전·모빌리티 등 기술 혁신 성과를 전 세계에 알린다. 지난해 469개사가 참가한 것과 비교해 1.7배 늘었다. 한국 기업과 스타트업이 CES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 기업·투자자들에게 자사 상품·서비스를 알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거나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CES급 초대형 글로벌 박람회가 국내에는 전무한 점도 이유로 꼽힌다.

프랑스(204개·4.7%)와 대만(179개·4.1%)에서도 많은 기업이 CES에 참가한다. 특히 대만 기업은 엔비디아·인텔·AMD·퀄컴 등과 협력해 '온 디바이스 AI' 기기를 대거 선보이며 삼성전자·LG전자와 경쟁한다. 온 디바이스 AI란 인터넷 연결 없이 기기에서 단독으로 생성형 AI 비서를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 일본(72개), 독일(67개), 이스라엘(36개) 기업들도 CES 참여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