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 거닐던 그곳처럼 사진으로 그린 수묵화

2024-01-08 05:00
마이클 케나 뉴코리아&잉글랜드展
영국 출신 풍경사진 대가 英 초기작·한국풍경 전시
2007년 대표작 '솔섬'으로 사라질 위기의 섬 살리기도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로 자신만의 상상에 빠지게 해
내달 3일까지 공근혜갤러리서…마지막날엔 작가와 만남도

‘Fish Washing Tank’ [사진=공근혜갤러리]

 
색(色)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잠시만 주위를 둘러봐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영상을 본다. 영상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짙은 ‘색의 유혹’이 가득하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달라질 결심’을 한다. 달라지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라도 주위 환경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계속 쳐다보지 않으면 불안했던 휴대폰을 잠시 주머니에 넣고 흑백 사진 앞에 섰다.
 
흑백 사진의 대가로 꼽히는 마이클 케나의 전시 ‘뉴코리아 & 잉글랜드’가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공근혜갤러리에서 개막했다.
 
1953년생인 케나 작가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영향력 있는 흑백 풍경 사진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을 배경으로 2023년에 촬영한 최신작들과 작가의 고향 영국에서 1975년부터 2000년까지 촬영한 보물 같은 초기작들을 한국 팬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뜻깊은 전시다.
‘파도’ [사진=공근혜갤러리]
 
특별히 이번 전시에는 전 세계 사진 컬렉터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마이클 케나의 대표작이자 영국 시리즈를 대표하는 ‘파도’ 작의 AP(Artist Proof) 에디션을 전시·판매한다. AP 에디션은 작가가 미술관 전시 등을 위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지난 5일 전시장에서 만난 공근혜 대표는 “케나 작가의 AP 에디션은 작품별로 4점씩밖에 없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 다섯 작품의 AP 에디션을 선보인다”고 설명했다. ‘뉴코리아 & 잉글랜드’에 전시된 판매용 작품은 45점 또는 25점씩 제작됐다.
 
1981년에 제작한 이 작품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완판되어 그동안 한국에서는 전시를 할 수 없었다. 북요크셔 해안가의 부서지는 높은 파도를 촬영한 걸작으로 최신 사진집 ‘사진과 그 이야기’의 표지이자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 가장 많이 소장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솔섬 1번’ 작의 작가 소장 분 AP 에디션도 이번 전시에서 특별 판매한다.
 
2004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자연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온 케나 작가는 국내에 ‘솔섬 사진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2007년 강원도 삼척시에서 촬영한 솔섬 사진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사라질 뻔한 섬을 구해서다. 솔섬은 한때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기지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으나 케나 작가의 사진으로 사진작가들 사이에 명소로 떠오르자 삼척시는 2009년 솔섬 보존 계획을 발표했다.
‘솔섬 1번’ [사진=공근혜갤러리]
 
‘뉴코리아 & 잉글랜드’에는 총 67점이 전시됐는데 이 중 한국에서 촬영한 작품은 27점이다. 특히나 2023년 한국에서 촬영한 신작 11점을 처음으로 만나 볼 수 있다. 케나 작가는 지난해 충남 홍성군, 서천군, 태안군과 강릉시 경포호 등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영국에서 태어난 케나는 풍경 사진의 대가로 불리며 전 세계 사진 애호가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다.
 
그는 새벽이나 밤 시간대 10시간 가까이 되는 장노출을 이용해 풍경을 담는 촬영 기법으로 동양의 수묵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점이 특징이다.
 
다양한 풍경들을 통해 사람과 주변 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고민한 작가는 전통적인 흑백 은염 인화 방식을 고집하며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창작의 요소라고 말한다.
 
그의 흑백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인화 방식에 있다. 공근혜 대표는 “흑백 사진을 인화할 때 하얀색을 강조하면 검은색이 회색이 돼 버린다. 반대로 검은색을 강조하면 흰색이 또 회색이 돼 버린다”며 “흑과 백이 한 사진 안에서 공존하는 게 쉽지가 않다. 케나 작가는 50년간 쌓아온 자신만의 비법을 통해 이를 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2005년 강원도 월정사에서 촬영한 ‘월정사, 나무와 고무신’ 작품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흑백 사진으로 고스란히 표현돼 있다.
‘월정사, 나무와 고무신’ [사진=공근혜갤러리]
 
케나의 흑백 사진은 관객을 상상하게 한다. 그는 지난해 9월 영국 가디언 신문과 인터뷰하면서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사진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사제 훈련을 받고 침묵과 규율, 기도하며 살았던 나의 초기 종교적 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며 “나는 무엇이든 사진을 찍을 때 표면 너머와 표면 밑을 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위로를 건넨다. 공근혜 대표는 “관객들은 케나 작가의 흑백 사진을 보며 자신만의 상상을 하게 된다”며 “케나 작가의 한 전시를 5번 이상 보러 오는 분이 꽤 많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위안을 얻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귀띔했다. 공 대표는 전시 입장표를 가지고 있으면 재관람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낯섦이다. 한국을 촬영했는데 한국 같지 않다. 2023년 전남 고흥군에서 찍은 ‘Fish Washing Tank’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꿈같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사각형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을 하게 한다. 자신만의 상상을 통해 보는 이는 잠시 세상사를 잊고 치유를 얻게 된다.
 
사진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인 앵글을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서 어떻게 배치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화면 안에서 수평, 수직, 대각선을 이루는 풍경적인 요소는 다양한 세상을 연출한다.
 
전시 마지막 날인 오는 2월 3일 오후 1시에는 한국 팬들을 위한 작가와의 만남과 책 사인회가 마련돼 있다. 이후 케나 작가는 한국에서 다시 겨울 촬영을 이어갈 예정이다.
 
케나 작가는 반세기 동안 세계 각지의 화랑과 미술관에서 600회 넘는 전시회를 했으며 프랑스 국립 현대미술관, 도쿄 사진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LA 현대미술관, 워싱턴 국립미술관, 상하이 국립 미술관,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그리고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 그의 작품들이 영구 소장되어 있다.
 
2000년과 2022년 두 번에 걸쳐 프랑스 정부에서 문화예술 공로 훈장을 받았으며 스페인, 미국, 일본 등에서도 예술상을 수상했다.
 
마이클 케나 작가 [사진=공근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