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AI 록펠러와 비판의 눈

2023-12-05 05:00
챗GPT, 1년 만에 일상 생활 속 자리 잡아
AI 개발에 '자본 힘' 막강…대중화 둔 빅테크 경쟁 치열
"비판적인 눈으로 결과 다시 확인한다면…"

최근 BBC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봤다. BBC 학생 기자 두 명은 학교 친구들을 대상으로 익명의 설문조사를 했다. 인공지능(AI)이 학습에 도움이 됐는지를 묻는 게 골자로, 응답자 33명 가운데 31명이 학교 숙제에 AI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약 94%가 AI를 학업에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학생이 사용한 AI는 챗GPT일 가능성이 크다. 오픈AI가 지난해 11월 챗GPT를 공개한 후 AI는 빠른 속도로 대중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었다. 오픈AI에 따르면 챗GPT의 주간 활성 이용자 수는 약 1억명에 달한다. 사람들은 챗GPT로 이메일 초안을 작성하고 문서를 요약한다. 노래 가사를 만들기도 하고, 앞에 나온 학생들처럼 숙제에 활용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챗GPT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거주하는 한 트렌스젠더 남성은 챗GPT에 성 정체성을 지지하지 않는 부모님과의 대화 방법 등을 상담(?)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친구들한테 듣고 싶었던 말을 챗GPT가 해줬다”고 말했다.
 
사실 챗GPT 등장 전만 해도 대중들은 ‘AI가 뭔데?’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동영상을 추천해 주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AI가 활용되고,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데 AI가 접목된다는 어렴풋한 이미지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AI에 대한 인식은 급변했다. 챗GPT란 AI 그 자체가 ‘제품’으로 등장하며, 우리는 AI가 무엇인지를 직접 체감할 수 있게 됐다. 하물며 챗GPT 출시 1년, 대중은 AI가 인류를 파괴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각국 정부는 AI 규제안을 마련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열었고, 미국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은 AI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우려에 6개월 동안 파업에 돌입했다. 이러한 우려는 오픈AI의 샘 올트먼 축출 사태로 극에 달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기술 부문의 주요 인사들은 AI를 통제해야 한다며 규제 도입을 촉구했다.
 
그러나 어떤 공포도 AI의 발전과 투자를 막지 못했다. 석유왕 록펠러와 자동차왕 헨리 포드처럼 이 신기술을 움켜쥔 새로운 ‘AI왕’이 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 등 빅테크는 막대한 금액을 AI에 쏟아부었다. 미국 스타트업 시장 조사 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1~9월 생성형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금액은 210억 달러(약 27조 4029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이 금액은 50억 달러 수준이었다.
 
AI는 기술 부문을 재편하고 있다. 오픈AI와의 파트너십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술업계 강자로 떠올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은 2조8000억 달러 수준으로 시총 1위 애플(2조9700억 달러)을 바짝 뒤쫓고 있다.
 
사실 AI 개발에서 자본의 힘은 막강하다. 윤리성과 사업성 사이에서 충돌한 오픈AI가 결국에 사업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 배경도 있다. 오픈AI가 GPT4를 훈련하는 데 든 비용은 1억 달러(약 1304억원)다. 아무 회사나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수다. 오픈AI 직원 90%가 올트먼을 다시 복귀시키지 않는다면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하겠다고 외친 이유다.
 
‘AI 록펠러’를 향한 치열한 경쟁은 이제는 되돌리기는 어려워진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답은 앞에 언급한 학생들의 설문조사에 있어 보인다. 응답자 33명 중 27명은 학교에서 ‘AI 사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챗GPT가 역사 에세이와 관련해 잘못된 날짜를 제시하거나, 물리학 과제에 틀린 답을 제공했다고 했다. 오류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챗GPT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답변이 틀렸을지언정 새로운 답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서 한 선생님은 말했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AI가 제시한) 결과물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한 학업에 문제가 없다.” AI 경쟁 시대, 인류에 가장 필요한 건 ‘비판의 눈’이 아닐까.
 
윤주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