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100℃] 골프공 백투더 1980…역사로 풀어보는 변천史

2023-12-04 17:30
스포츠가 끓어오르는 100℃
R&A·USGA "골프공 비거리 회귀"
2026년부터 1980년대 비거리
1980년대에도 있던 롤백 논쟁
역사로 풀어보는 골프공 변천

[영상=EWJXN 유튜브]

1988년 한 용품사 골프공 광고. 프로골퍼가 티잉 구역 위에 섰다. 코스를 따라 늘어선 갤러리의 시선이 집중된다. 감나무 골프채를 쥔 프로골퍼가 백스윙을 한다. ENG 카메라를 든 카메라맨마저 줌을 당긴다. 프로골퍼가 호쾌한 샷을 날린다. 날아간 공은 지구로 바뀐다. 해당 용품사는 표어를 넣는다. '단 하나의 공'.

198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 광고가 20년이 지난 오늘날 재현될 조짐이다. 골프용품과 규칙 등을 관장하는 로열앤드에이션트골프클럽(R&A)과 미국골프협회(USGA)가 골프공 회귀를 선언하면서다.
 
골프공 1980년대 비거리로 롤백…15% 감소

회귀 이유는 명확하다. 골퍼들이 너무 멀리 날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절 몸을 키우며 헐크라 불리던 미국의 브라이슨 디섐보는 400야드(약 365m) 고지를 정복했다. '300야드(약 274m) 장타자'는 옛말이 됐다.

디섐보 같은 초장타자의 등장으로 프로골프 대회를 개최하는 골프장들은 코스 전장을 끊임없이 늘려야 했다. 리노베이션에 막대한 돈이 드니 불만을 토로했다. 

R&A와 USGA는 이러한 점을 짚었다.

365m 고지 정복은 비단 디섐보의 벌크업(근육 키우기) 때문은 아니다. 골프공과 골프채의 발전도 있다. R&A와 USGA는 일단 골프공을 손보기로 했다.

적용은 2026년부터다. 골프공 공인을 받으려면 스윙 스피드 125mph(시간당 마일)에서 317야드(약 289m)를 넘지 말아야 한다. 현재는 120mph에 같은 거리다. 적용 이후 317야드를 넘기면 비공인으로 분류된다.

유럽골프코스설계자협회(EIGCA)에 따르면 5mph 증가는 비거리 15% 감소로 이어진다.

지난주 종료된 히어로 월드 챌린지까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99.9야드(약 274m)다. 약 300야드라 치자, 15% 감소면 255야드(233m)다.

255야드는 1980년대 PGA 투어 평균 비거리다. 영상 속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다.

골프계는 이를 'Roll Back(롤백)'이라 부른다. 롤백은 지난 버전으로 되돌린다는 뜻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골프공 롤백 앞두고 충격에 빠진 골프계

골프공 롤백을 앞두고 골프계는 충격에 빠졌다.

골프공을 만드는 용품사는 즉각 반응했다. 타이틀리스트는 '골프 발전을 저해할 것', 테일러메이드는 '골퍼 81%가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들도 부정적이다. PGA 투어와 미국프로골프협회(PGA of America)는 '이 규정을 시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코스 설계가들 사이에서는 이견이 생겼다.

팀 롭 EIGCA 회장은 "비거리가 줄면 코스가 짧아지고 플레이가 빨라진다. 유지 관리 비용이 저렴해진다. 골프장 수익성이 높아지는 결론"이라고 찬성했다. 

크리스틴 런딘 헨리크 스텐손 골프 디자인 건축가는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프로무대에서 선수들은 짧은 비거리를 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새로운 코스에서는 점점 더 많은 토지가 필요하다. 이러한 제안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1980년대에도 있었던 던 골프공 롤백 논쟁
미국 골프다이제스트는 1983년 12월 호 표지에 태양 앞에 있는 공을 묘사했다. "새 공이 너무 뜨겁습니까?(Are the new balls too hot?)"라는 문구와 함께.

당시 골프공 업계에서는 일명 '그레이트 딤플 레이스'가 펼쳐졌다. 이는 딤플 배열을 통해 비거리 골프공을 추구하는 제조업체 간의 경쟁이다.

논쟁의 시작은 1983년 초 타이틀리스트사가 출시한 384 투어 볼이다. 384는 딤플의 수였다. 맥그리거를 소유한 잭 니클라우스마저 투어에 이 공을 들고 나타났다. 이처럼 투어 프로들은 '가장 뜨거운 공'이라고 말했다. 맥그리거는 새로운 잭 니클라우스 뮤어필드 공에 딤플 8개를 추가했다. 니클라우스는 이때 맥그리거 공으로 돌아갔다. 딤플은 곧 비거리였다.

당시에도 롤백 이야기가 나왔다.

딤플이 많은 골프공을 선택했던 니클라우스는 "USGA에 공이 너무 멀리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회에 있어서는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톰 왓슨은 "한계에 부딪혔다. 공이 더 이상 가면 안 된다. 공의 성능은 일관돼야 한다"고 말했다.
 
래리 넬슨과 톰 카이트의 생각은 달랐다. 넬슨은 "지금 사용하는 공(타이틀리스트 384)은 어떤 공보다 멀리 나간다. 그러나, 불법이 아니다. 엄청 멀리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카이트는 "공을 더 멀리 치는 것은 골프공이 아닌 나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4세기부터 비거리로 발전해 온 골프공

R&A와 USGA의 골프 규칙 5-1에 따르면 공인 골프공 질량은 45.9g 이하, 지름 42.7㎜ 이상이다. 공은 구형으로 대칭돼야 한다. 딤플 수에는 제한이 없다. 

골프공의 역사는 14세기부터 시작됐다. 초기 공은 17세기까지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나무 공과 작대기를 들고 콜프(Kolf)라 불렀다. Kolf는 네덜란드어다. 

이후에는 깃털이 들어간 가죽 공이 나왔다. 당시 가격은 최대 5실링. 현재는 미화 20달러(약 2만6000원)에 해당한다.

1848년 로버트 애덤스 패터슨 목사는 구타페르카 공을 발명했다. 일명 거티다. 거티는 말레이시아 사포딜라 나무 수액으로 만들었다. 굳은 수액은 고무 같은 느낌이다. 흠집이 있는 공이 더 멀리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코어가 삽입되기 시작한 것은 1898년이다. 코번 하스켈이 고무 실을 공 모양으로 감아 튀기면서다. 이후 공은 액체로 채워지거나 단단한 둥근 코어로 구성됐다.

딤플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다. 딤플을 적용하면 공의 궤적, 비행, 스핀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허를 출원한 사람은 데이비드 스탠리 프로이 등이다. 프로이는 19900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프로토타입 버전을 들고 출전했다.

골프공의 현대화는 1960년대 중반부터다. 우레탄 혼합물이 나오면서다. 코어 층에 따라 2피스, 3피스, 4피스로 분류됐다. 이러한 노력으로 플레이어 개성에 맞출 수 있게 됐다. 

골프공의 역사는 대략 700년이다. 발전과 발전 사이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비거리다. 더 멀리 보내고자 하는 사람의 욕심이 365m 고지를 돌파하게 했다.

R&A와 USGA 비거리 회귀 시행은 약 2년을 앞뒀다. 1980년대처럼 논쟁으로 끝날지, 1980년대 비거리로 돌아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