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개 식용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2023-12-06 05:00
필자는 종종 미래의 후손들이 우리 세대를 어떻게 바라볼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과거에 다정하고 교양있는 분들이 어떻게 노예를 자기 물건처럼 소유할 수 있었을까 의아해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후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현재의 도덕적 올바름(moral uprightness)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후대 사람들은 이 문제를 후진성(backwardness)이라는 개념으로 뒤돌아볼 것으로 필자는 상상해본다. 그들은 옛날 사람들이 소의 젖을 짜고 양떼를 몬 것은 이해할지 몰라도, 어떻게 전용기를 타고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이 동물을 도축하여 만든 햄버거를 먹었는지에는 역겨움을 표할 것이다.
당장은 그럴 가능성이 없어보일지 몰라도, 이런 식의 변화는 매우 빠른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다. 즉, 시험관에서 자란 배양육(lab-grown meat)이 상업적으로 널리 퍼지면 채식주의 시위자들이 행동에 나서고 아마도 한두 세대 내로 가축 사육장, 도살장과 정육점은 과거의 추억으로 사라질 것이다.
개 사육 농부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항의의 의미로 서울 도심에 200만 마리의 개를 풀 것이라며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이제 한국 사람들은 개를 고기가 아니라 반려동물로 본다. 갤럽 코리아의 작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 2가 개 식용에 반대했다. 오직 8%가 개고기를 먹어본 적 있다고 답변하였고, 2015년 27%와 비교하면 크게 감소한 결과다.
시위 위협 자체가 터무니없어 보인다. 그저 그들을 21세기 버전 러다이트(Luddites)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나는 독자들도 있을 거다. 200년 전,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본인들이 일자리를 뺏길까 방직 자동화 기계들을 부수던 수공업 노동자들 말이다.
식용 개 농장주들이 서울 전역에 개를 풀어 시민들은 집 안에서 공포에 떨고, 소방관들은 개들을 잡기 위해 그물을 가지고 뛰어다니는 상상 속의 모습은 이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처럼 필자에게 다가온다.
솔직히 말하면, 개 식용 농부들은 허세를 부린다고 말할 수있다. 그들도 언젠가 식용 개 산업이 끝날 거라는 걸 알고는 있을 것이다. 개고기 거래 금지 법안이 도입되면 2027년에 시행될 예정이다. 다른 나라는 입법이나 신기술로 인하여 일자리를 잃은 산업군의 사람들이 스스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반면, 한국 정부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정부는 식용 개 사업을 정리하는 농부들이 다른 생업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시위가 정부로부터 확실한 지원 약속을 받아둘 뿐만 아니라 지원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개고기 거래가 사라지면 개고기 식용 반대를 외쳤던 사람들의 승리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물권을 외치는 사람들은 훗날까지 생각할 만큼 사려 깊고 신중하다. 그들은 농부들이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구조된 개들은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전 지구적으로 보았을 때 국내 활동가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들은 모든 육식을 반대하는 더 넓은 운동의 일부이다. 그들은 소, 양, 돼지, 닭과 토끼의 해방에 헌신하고 있다. 이건 분명히 좋은 움직임이다. 혹자는 터무니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과학은 이미 배양육을 연구하며 그들의 편에 서있다.
배양육이 널리 상용화 되기 시작한다면, 더 급진적인 활동가들이 나타날 것이다. 언젠가 그들은 도축장의 끔찍한 현실을 공개할 것이다. 도축장으로의 체험학습은 중학생들을 채식주의자로 만들 것이다. 현대 사회는 타인에 대한, 애완동물에 대한, 환경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미덕 삼고 행동하지만 여전히 가축들의 곤경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햄버거와 가공육이 어떻게 우리 식탁에 오르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동물들이 일상적으로 학살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배양육으로의 전환이 급속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후손들은 그들의 조상인 우릴 보고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진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고요?” 후손들에게 육식이란 너무 잔인하고 불쾌해서 우리 시대의 사상이나 업적이 단순히 그 사람이 육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시될 수 있을까? 그들은 ‘육식주의자의 의견 따위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일까?
너무 과장해서 말하고 싶진 않다. 줄리어스 시저나 조지 워싱턴 같은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시대에 기여한 바를 역사가 인정하는 것처럼, 조 바이든이나 윤석열 같은 지도자들도 샌드위치에 소고기를 넣어 먹었지만 역사적으로 적절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사람들은 예술가나 지식인들이 육식을 했다는 이유로 높이 평가하는 걸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자면, “오, 너 <햄릿> 읽고 있니? 근데 그거 알아? 셰익스피어가 육식을 했다는 거?”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번역: 문가현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