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ELS 판매 은행에 '일침'…"고령자에 권유, 적합성에 의구심"

2023-11-29 15:47
"금소법 '적합성 원칙' 어긋나…투자상품 설명 지나치게 형식적"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감원-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흐름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상품에서 수조 원대 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판매사인 은행권을 향해 강한 질타성 발언을 쏟아냈다.

이 원장은 29일 열린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주가연계증권(ELS)과 관련해 은행들이 소비자 피해가 예방 조치됐다고 얘기하는 것은 자기 면피로 보인다"며 "(은행들은) 자필을 받거나 녹취를 확보해 불완전판매 요소가 없다는 주장인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 책임이 면제될 수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금융기관이 소비자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가입 목적에 맞는 적합한 상품을 권유해야 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적합성 원칙' 취지에 어긋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노후 보장 목적으로 만기 정기예금에 재투자하고자 하는 70대 고령 투자자들에게 수십 % 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난도 상품을 권유했다"며 "이런 고위험 상품이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에게, 특정 시기에, 고액 판매됐다는 것만으로도 적합성 원칙이 지켜졌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투자 상품이나 보험 상품에 대한 설명은 지나치게 형식적이면서 오히려 금융회사에 면책 근거만 준다"며 "소비자들은 실질적으로 고지를 못 받고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드는 문제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시중은행 중 ELS 판매 규모가 가장 큰 KB국민은행을 겨냥해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이 원장은 "수십 개 증권사를 합친 것보다 국민은행 ELS 판매액이 많다"며 "설명 여부를 떠나서 권유 자체가 적정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지난 20일부터 국민은행을 대상으로 현장점검에 돌입했으며 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판매 은행에 대해서는 서면조사에 들어갔다. 통상적으로는 손실이 확정되는 내년 이후 금융당국이 점검에 나서지만 이번엔 국민은행으로 쏠림 현상이 뚜렷한 데다 사실관계를 빨리 점검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판단한 데 따른 조치다. 이 원장은 "가능한 한 연내 기초 사실관계를 파악하려고 노력 중"이라며 "(금융사와 소비자 간) 책임 분담 기준을 만드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홍콩H지수 ELS 발행 잔액은 총 20조5000억원이며 이 중 은행 판매분은 15조8000억원이다. 은행 판매분 중 절반가량인 8조3000억원은 2024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한다. 상품 구조와 현재 주가 수준을 감안할 때 3조~4조원대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NH농협은행은 현재 H지수 ELS 판매를 중단했으며 다른 시중은행들도 관련 상품 판매 중단 등을 포함해 ELS 상품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