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학개론] 호재 발표에도 속출하는 'K-셀온'…"중소형주 중심으로 발생"

2023-11-21 17:3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코스피 상장사인 A 종목이 지난 16일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에 로켓·위성용 특수합금을 공급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계약 규모가 1000억원대이며 이달 내 계약을 체결한다는 호재성 뉴스가 나온 것입니다. 이날 A 종목은 시초가인 2만4900원에서 장중 18%까지 오른 2만9500원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셀온(sell-on)'에 16.95% 내린 2만4500원에 장 마감했습니다.

여기서 셀온은 종목에 호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급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판다'는 격언과 일맥상통합니다. 주식시장에서 왜 이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기관투자자를 비롯해 좋은 정보를 미리 입수한 투자자들이 먼저 주식을 매수한 후 호재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에게 주식 물량을 떠넘기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호실적 나왔는데 주가는 내리막길…K-셀온에 '한숨'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가 하락을 예상하지 못하다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 심리에 기반을 둡니다. 좋은 소식이 들려올 땐 '이건 대박이다!'라고 인식해 주가가 기대감에 힘입어 상승할 수 있지만, 아무리 대단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무뎌지게 마련입니다. 실제로 현실화하더라도 원래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고편에 익숙해졌기에 신선함이 덜하게 됩니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기업 실적입니다. 이번 3분기에 엔터테인먼트사들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을 기록했습니다. 에스엠의 연결 기준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8.8% 증가한 505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최대 실적을 거뒀습니다. 하이브의 영업이익도 지난해보다 20% 증가한 727억원을 달성했습니다, JYP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도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9%, 37% 증가했습니다.

이에 반해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지난 8일 가장 먼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에스엠을 기준으로 이달 20일까지 에스엠, 하이브,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의 주가 수익률은 각각 –19.37%, -14.99%, -14.37%, -16.12%로 집계됐습니다.

 
[자료=한국거래소]
엔터테인먼트 업종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닙니다. 라면 업계도 3분기에 좋은 성적표를 거두었지만, 주가는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농심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03.9% 오른 557억원을 기록했다고 지난 14일 공시했습니다. 같은 날 삼양식품의 영업이익도 124.7% 상승한 434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난 14일부터 이달 20일까지 농심과 삼양식품의 주가 수익률은 각각 –12.89%, -7.14%를 기록했습니다.

 
[자료=한국거래소]
수주계약·M&A 등 장르 안 가려…"이유 설명하기 어려워"

셀온 현상은 어닝 서프라이즈 외에도 △공급계약 체결 △M&A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공급계약 체결 사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4월 26일 배터리 셀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30조2595억 규모의 양극재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습니다. 계약 기간은 2029년 12월 31일까지이며, 연평균 공급금액으로는 약 4조3000억원에 해당합니다.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 대비 916.4%에 달하는 규모이지만, 시장에서는 주가 상승의 재료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4.32%(1만5000원) 내린 33만25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인수·합병(M&A)도 예외는 아닙니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전해액을 만드는 엔켐은 지난 7월 31일 이차전지 관련 업체인 비상장사 티디엘의 지분 55%를 약 2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공시했습니다. 엔켐은 김유신 티디엘 대표가 가진 지분을 전부 인수함으로써 전해질 소재 기술을 확보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공시한 날부터 지난 8월 31일까지 한 달간 엔켐의 주가는 –5.39% 빠졌습니다.
 
[자료=한국거래소]
증권가에서는 대형주보다는 중·소형주 중심으로 셀온이 많이 발생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3분기에도 중·소형주 실적이 나올 때가 되니 증권사 연구원들을 중심으로 주가가 이미 먼저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기관 투자자들 중심으로 셀온 현상도 두드러졌다"며 "정보의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보이는 전형적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월 14일 금융당국에 "우리 증권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개인투자자를 보호하는 제대로 된 해결책을 준비해달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처럼 개인 소액 투자자 보호는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셀온 현상에 관해 설명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셀온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에 관해서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