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첫 번째 글로벌 혁신 센터인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 문이 열렸다. 지난 16일 찾은 HMGICS는 주롱 혁신지구에 연면적 9만㎡(약 2만7000평) 규모로 완공됐다. 부품 분류부터 제조, 검수까지 전 과정이 자동화로 이뤄지는 현대차그룹의 첫 스마트 팩토리로 인공지능(AI) 기반 제어시스템, 사물인터넷(IoT), 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을 가장 먼저 적용하는 테스트베드가 될 전망이다.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미래 항공 모빌리티(AAM)를 비롯한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개발도 이뤄진다. 근무 인원은 280여 명으로 이 중 절반 이상이 연구·개발(R&D) 인력이다. 이곳에서 개발한 기술·기법, 플랫폼은 전 세계 공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연간 생산량은 3만대로 아이오닉 5를 시작으로 전동화 모델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컨베이어벨트 대신 유연생산 '셀 방식'…똑똑한 품질 검사원 '스폿'
지상 7층 높이 건물의 HMGICS는 스마트 제조 및 품질 연구 시설과 브랜드 체험 공간, 차량 인도 공간, 생산 시설로 꾸며졌다. 1층에 들어서니 자동물류 시스템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작업자는 모니터를 통해 자동창고에 입고된 부품들을 조립 순서에 맞게 피킹하고 이를 세트박스에 담고 있었다. 세트박스는 AGV 위에 올려져 세트박스 적재장으로 옮겨졌다가 3층의 차 제조 공간으로 이동한다. 바닥에 있는 QR코드를 인식한 AGV는 정확한 목적지를 찾아 자동으로 차체를 옮긴다. 차체 이동 업무를 로봇이 담당하면서 컨베이어 벨트의 필요성은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AI는 재고를 실시간 관리하며 3층 생산 시설에 필요한 부품을 알아서 올려 보낸다.
현대차그룹이 개발 중인 부품 분류 로봇은 마치 코끼리가 코로 물건을 옮기듯 부품을 집어들었고 좌우로 털며 함께 따라 올라온 부품들을 떨궈냈다. 부품을 피킹하고 분류하는 시간은 5~6초였으나 현재 2초대까지 줄였다.
3층에서는 본격적인 자동화 공정이 시작된다. 타원형 모양의 유연 생산 방식인 '셀(Cell)' 시스템에서는 전장 계열 부품 조립부터 구동 부품·서스펜션 장착, 시트 등 인테리어 부품 장착 공정 상당수를 로봇이 맡는다. 각 셀마다 1~2명의 직원만 있을 뿐 대부분 로봇과 기계가 춤을 추듯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십, 수백명의 작업자가 공정 단계마다 서 있던 컨베이어 벨트 생산 방식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현대차그룹이 개발한 자율주행 로봇(AMR)은 초당 최대속도 1.8m로 움직이며 1층에서 분류된 부품을 셀로 나르고 있었다. AMR에는 라이다와 카메라, 센서가 달려있어 장애물을 실시간으로 피해 목적지를 찾아간다.
한 작업자는 왼팔에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착용하고 차 하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개발한 로봇개 스폿은 작업자를 따라다니며 차 제조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AI 키퍼로 불리는 스폿은 품질검사를 담당한다. 총 15장의 이미지를 찍고 38개 부품에 대한 검사를 진행한다. 이를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조립 품질을 평가하고 작업자는 부족한 부분을 바로 수정할 수 있다. AI 기반이기 때문에 불량품 판별 속도, 정확도는 96%에 달한다. HMGICS에 있는 로봇은 총 200대다.
자동화율 46% 달성…품질·작업자 안전 향상, 불량률 감소
세계 최초의 섀시모듈 자동체결 공정도 기존 공장과의 차이점이다. 자동체결 정확도는 90%로 공정 속도도 현대차의 가장 빠른 대량생산 속도의 절반에 이른다. 섀시모듈 자동체결 공정이 두곳만 설치돼도 대량생산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셈이다. 이곳의 작업 역시 모두 로봇이 담당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차가 스스로 운전하면서 검사를 할 수 있는 기술 개발도 마쳤다"며 "오토노머스 기능의 해킹문제만 보완된다면 바로 실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종합상황실 역할은 디지털 커맨드 센터에서 담당한다. 앞으로는 로봇의 움직임, 각종 작업자의 움직임 등도 디지털 트윈에 포함시켜 사람과 로봇과 전체적인 공장 운영을 최적화할 방침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공급받은 도장된 보디로 완성된 차체는 검차 과정에서 3D로 스캐닝돼 품질·성능 테스트를 꼼꼼하게 받는다.
HMGICS의 자동화율은 46%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자동화율이 22%에서 최근 10%대로 낮아진 것을 고려하면 높은 수준이다. 현대차의 평균 자동화율도 10%대다. 이에 따라 공정도 일반 공장의 공정(200공정)보다 8분의 1 수준인 27공정으로 단순화됐다. 시간당 생산량은 2.5대(UPH)다.
자동화의 최대 강점은 품질, 작업자의 안전 향상과 불량률 감소다. 기존 컨베이어벨트 생산 방식은 불량이 있어도 계속 흘러가야 했다. 로봇은 무조건 학습된 데이터 이상으로 품질이 좋아야 다음 공정으로 넘어간다. 로봇은 쉬는 시간이 없어 일의 효율성을 높이고 사람은 고차원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조립을 마친 차는 5층 옥상의 주행시험장 '스카이 트랙'으로 옮겨진다. 총 620m 길이의 스카이 트랙에는 직선 코스, 최대 기울기 33.5도의 코너링 코스가 갖춰져 있고 최대 120㎞의 속도로 직진성, 안전성, 바람소리, 회생제동 등의 성능 검사를 할 수 있다. 고객은 이곳에서 자신이 주문한 차량을 시승해본 다음 차를 받는다.
정홍범 HMGICS 법인장은 "싱가포르는 굉장히 작은 시장이지만 많은 브랜드들이 진출했고 정부 역시 의욕적으로 혁신 구역을 만들고 있다"며 "공장 전반의 프로세스 지능화와 자율화가 HMGICS의 차별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