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원로에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정병국 예술위 위원장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적 리더십', 양극화 시대, 필수 조건"
2023-11-14 05:00
만연한 갈등비용 246조 해소 첫 걸음
창작의 영역 다름을 인정하는 시각부터
창작의 영역 다름을 인정하는 시각부터
“사회적 갈등은 결국 남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창작이잖아요. 다르지 않으면 창작품이 될 수 없고 예술이 될 수 없어요.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지만 시작이 되는 거더라고요.”
2023년 대한민국의 사회적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은 연간 최대 246조원을 사회적 갈등 관리 비용으로 쓰고 있다.
오래된 갈등을 봉합하는 방법 중 하나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에서 본지와 인터뷰한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갈등 완화 해법으로 문화예술을 꼽았다.
정 위원장은 “예술을 만드는 것처럼 공연과 예술을 감상할 때도 보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관점을 갖게 된다”며 “이를 타자와 공유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공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을 많이 향유하고 접하는 사람들일수록 갈등 요인이 적고, 그 사회의 갈등 지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문화예술은 지금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런 갈등 요인들을 완화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다름’을 아는 것은 사회적 갈등 완화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데도 중요하다.
최근 문화예술계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문화와 기술의 융·복합이다. 예컨대 시를 쓰는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것은 기존에 없었던 공연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 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이 중요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게 될 사람에 대한 인문학적인 이해도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이처럼 인문학적인 접근을 하는 벤처기업들을 많이 볼 수 있다”며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문화예술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문화적 리더십’이라고 명명했다. 정 위원장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다원화되어 있는 욕구들을 조율해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카리스마를 갖고 ‘나를 따르라’고 말하는 리더십은 이제는 아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화의 힘에 대한 확신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의 시작은 문화예술인이 아닌 정치인이었다. 30여 년간 정치를 해왔다. ‘다름’에 끌렸다. 문화예술이 좋아 초선 때부터 3선 때까지 상임위원회로 문화체육관광위원회(당시 문방위)를 선택한 그는 197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 출발한 예술위가 2005년 예술위 법인이 설립돼 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정치권이나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 문화예술인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곳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다.
예술위가 50주년을 맞은 올해 1월 제8대 예술위 위원장으로 선출된 정 위원장은 “많은 분이 예술위원장으로 추천해주셨을 때 고사했다. 정치인이 갈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예술인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외풍에 휘둘리지 않는 바람막이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하셨다”고 위원장을 받아들인 이유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정 위원장은 “그동안 많은 공연을 보고, 전시장을 가고, 예술인과 대화를 하면서 공감이 생긴 것 같다”며 “최소한 문화예술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소위 말하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보면 그걸 만든 작가와 대화하고 싶다. 문화예술을 즐기는 데 진영 논리는 낄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