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정치는 노‧장‧청 융합해야 발전"...6선 박병석 전 국회의장 '아름다운 퇴장'
2023-11-07 07:00
"들어갈 때 나갈 때 잘 판단해야…의장까지 했으면 할일 다 한 것 아닌가"
"노년·장년·청년 결합 가능할 때 발전…정치 혁신 본격 물꼬 못 틔워 아쉽다"
"노년·장년·청년 결합 가능할 때 발전…정치 혁신 본격 물꼬 못 틔워 아쉽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 작(作) '낙화'의 첫 구절이다. 21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아름다운 퇴장'을 결심했다. 박 의원은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1998년 언론인에서 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한 지 24년 만이다.
협치가 사라지고, 공천이 먼저인 여의도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선언이다.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들도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치인의 위치에서 내려와 자연인을 선언한 그의 다음 행보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정치권에서는 박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인적 쇄신 요구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취재진과 박 의원의 일문일답.
"국가와 대전에 대한 헌신은 계속될 것"
-내년 5월에 임기를 마친 뒤의 향후 거취는 어떻게 되는가.-불출마를 선언하신 결정적 계기가 있을까.
"들어갈 때와 나갈 때를 잘 판단해야 한다. 제가 300명의 국회의원 중 유일한 6선 의원이다. 제 지역구는 대대로 민주당에게 불리한 험지였다. 거기서 연속 6번으로 낙선 한 번 없이 선택을 받고 국회의장까지 했으면 국회에서 할 일을 다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앞으로도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국가와 또 저를 키워주신 대전에 대한 헌신은 계속될 것이다."
"국회의원에 몇 번 당선됐는지가 출마 기준이 되면 안된다. 정치도 '노·장·청(노년·장년·청년)의 결합'이 가능할 때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청년의 패기와 장년의 추진력. 그리고 노장의 경륜과 지혜가 함께 어우러질 때 그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노장청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는 물음은 시대 상황에 따라 알아서 조절될 것이라 본다."
-박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다선 의원이 많은 '비이재명계'에 압박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있겠지만 영향을 미칠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불출마 선언을 하셨는데, 내년 총선에서 후보자가 아닌 다른 역할로 기여하실 생각은 있는가.
"민주 개혁진영의 의회 진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국회의장 임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성과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제가 정치 시작 이후부터 국가균형발전을 정치의 중요 화두로 세웠다. 그런 집념이 쭉 뒷받침 돼서 국회의장 시절, 제 주도로 여야가 합의해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법'이 통과됐다. 특히 의장 임기 마지막 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별사를 전할 때 여야 의원들이 기립 박수를 쳐주는 의회 초유의 감동도 있었다.
아쉬운 점은 선거제도 개혁 등 정치 혁신의 본격적인 물꼬를 트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개헌으로만 가능하다.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즉, 1당이든 2당이든 다른 정당과 합의해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는 선거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당제가 실현 돼서 어느 1당도 절반을 넘지 못할 때에야 제도적 협치가 이뤄질 수 있다."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혁신 경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에 가장 필요한 혁신은 어떤 것이라고 보시나.
"민주당은 우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에 취하지 말아야 한다. 강서구청장 승리가 민주당이 잘해서 이뤄진 것인지 (정부·여당의 잘못으로 인한) 반사이득인지 냉철하게 판단하고 승리감을 빨리 잊는 게 좋다.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 그 민심의 핵심부터 접근하는 게 바람직한 순서라고 생각한다."
'한결같은 사람' 박병석...현역 최다6선
박병석 전 국회의장은 1952년생으로 대전에서 나고 자랐다. 대전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98년 4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수석부대변인과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맡았다. 그 다음해에는 고건 서울시정에서 제5대 정무부시장을 반 년간 역임하기도 했다.
2000년 5월 제16대 총선에서 박 전 의장은 대전 서구갑에 출마, 당선된 뒤 단 한 차례의 패배도 없이 같은 지역에서만 내리 6선을 했다. 이는 21대 국회에서 여야 최다선 기록이다.
초선의원 시절 박 전 의장은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단일화를 촉구하며 단일화 협의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내 개혁 소장파 세력들과 열린우리당 창당에 일조했다. 자유선진당이 돌풍을 일으켰던 18대 총선에서는 대전지역에서 유일하게 통합민주당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6번의 국회의원직을 지내며 민주당 대변인, 당 정책위의장, 재외동포위원장 등을 지냈다. 국회 정무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예결산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제17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치며 경제와 외교부문 정책을 주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중국대사로 두 번이나 제안을 받을 정도로 '중국통'으로 불린 박 전 의장은 2017년 한·중 의원외교협의회장으로 선임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문제로 얼어붙은 한중 관계 개선을 노력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을 거쳐 제21대 전반기 국회의장직에 추대됐다. 국회의장 임기 시절 박 전 의장은 합의와 소통을 강조하며 '여대야소' 국회를 균형감 있게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 후반기에는 언론중재법과 관련, 협치를 강조하며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주재한 바 있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단독 처리를 무산시키며 당 내부에선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거대 여당 민주당과 소수 야당 사이에서 일방적인 독주를 적절하게 제어했다는 평을 받는다.
박 전 의장 임기 때 여야는 합의를 통해 2년 연속 예산안법정기한(매년 12월 2일) 내 처리했다. 또 박 전 의장은 재임 시절 국회세종의사당 추진에 힘쓰며 '국회 세종시대' 이정표를 세웠으며, 국회의원 배지 속 한자를 한글로 바꾸는 일도 주도했다. 지역민들은 그에게 '한결같은 사람' 수식어를 붙였고, 박 전 의장은 제18대 총선부터 이 수식어를 선거구호로 써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