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연의 B스토리]가전, 예술이 되다...시그니처, 초프리미엄 시대를 열다

2023-11-03 12:00

<편집자주> 시대가 변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어디에 살고, 무슨 브랜드의 옷을 입으며, 어떤 걸 먹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사회가 됐습니다. 같은 가죽 가방일지라도 NO 브랜드 제품은 10만원이지만 에르메스가 만들면 1억원에 팔립니다. 바야흐로 '찐 브랜드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합리적인 선택이 미덕인 사회지만 그럴수록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갖춘 기업만 살아남는 현실은 역설적입니다. 인간의 이성을 한순간에 무력하게 만들고,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파워 브랜드의 뒷얘기를 살펴봅니다. 하나의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뼈를 갈아 넣는 기업들의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누군가는 부의 1% 기회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사진=LG전자 시그니처]

"가전제품의 시대가 저물고 예술의 시대가 열렸다."
 
TV가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대당 5000만원대 TV가 있다? LG전자의 '시그니처(SIGNATURE)'이야기 입니다. 시그니처는 가전업계의 '에르메스'로 불립니다. 기존에 없던 초프리미엄 시장 카테고리를 개척한 것은 물론 전자업계 최초로 브랜드가 드러나지 않는 '로고리스(logoless)'를 도입해 역으로 확실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명품업계 톱티어 브랜드들의 전략과 매우 유사합니다. 

'갤러리 같은 집'은 내집 마련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소망입니다. 갤러리 같은 집을 말할 때 화룡점정은 아마 가전제품일 겁니다. 집을 보면 집주인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갤러리 같은 집의 소유자라면 가전제품으로 전체 인테리어를 해치는 경솔함을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선배 A는 "혼수 가전 만큼은 꼭 시그니처이어야 한다"면서 "시그니처여야만 '골드미스'라는 나의 정체성을 시댁에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시그니처가 가전 시장에서 같는 의미를 잘 표현한게 아닐까요. 경쟁사들은 시그니처에 대해 "비싸긴 드럽게 비싼데, 또 예쁘긴 드럽게 예뻐 얄미워 죽겠다"고 말합니다. 시그니처, 그 역사의 탄생을 살펴봤습니다.
 
시그니처는 LG전자의 초프리미엄 제품군으로 2016년 처음 공개됐습니다.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와인셀러 등 제품군이 다양합니다. LG가 만든 일반 가전의 경우 냉장고는 '디오스', 의류 관리기기는 '트롬', 에어컨은 '휘센' 등으로 불리지만 시그니처는 냉장고, TV, 에어컨 등 전 라인업에 적용된다는 점에서 기존 제품과 다릅니다. 때문에 구매자들은 뭘 사더라도 "내가 산건 냉장고가 아니다. 시그니처다"라고 말합니다.

시그니처 첫 론칭 당시 디자인에 참여한 덴마크 출신 산업디자이너 톨스텐 벨루어는 "좋은 디자인, 그 이상의 것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습니다. 갖고 싶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오래가는 것, 주변과 어울리면서도 제품 그 자체로 강한 상징성을 드러내야하는 것, 이게 바로 시그니처의 디자인 철학입니다. 벨루어는 당시 "단 하나의 제품만 구매하더라도 집안 전체에서 LG시그니처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실제 시그니처는 '가전제품은 예쁘지 않다'는 편견을 깼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가령 주방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던 냉장고는 첨단 기능을 갖춘 아트월로, 거실 모퉁이에서 흉물스럽게 존재하던 에어컨은 시그니처와 만나 직선과 곡선의 아름다운 조형물로 재탄생했습니다. 단순히 영상을 보는 도구에서 갤러리에 걸린 작품이 된 TV는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디자인 자체도 압도적이지만 기술도 못지 않습니다. 시그니처는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직관적인 사용감을 제공하는 기술력으로도 유명합니다. '똑똑' 노크하면 냉장고 안을 들여다 볼수 있는 매직스페이스, 손을 대지 않고 발 센서로 문을 열수 있는 냉장고, 냉동실 문을 열면 자동으로 내부 서랍이 나오는 오토 스마트 드로어 시스템 등은 디자인 만큼이나 기술력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입니다. 

시그니처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저력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최근 출시한 'LG 시그니처 올레드 M'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 최고 발명품(The 200 Best Inventions of 2023)'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타임이 선정한 올해 최고 발명품 200개 가운데 유일한 TV 제품군입니다. 다른 TV와 달리 전원 외 입출력을 위한 어떠한 연결선도 없고, 최대 약 10m내에서 4K 해상도의 고화질 영상을 무선으로 전송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LG전자는 시그니처 상품을 개발할 때 디자인을 먼저 결정한 뒤 기능을 구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기술력이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일반적인 가전업계의 개발 프로세스와는 다릅니다. 디자인 자체를 기능의 일부로 만드는 개발 방식은 '영국의 애플'로 불리는 가전기업 다이슨이 채택하는 혁신과도 유사합니다. 모두 다 초프리미엄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부합하기 위한 기업의 필사적인 노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