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지구 위기의 시대, 다시 보는 버섯의 가치

2023-11-03 05:00

김병석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특작부장. [사진=농촌진흥청]
피톤치드 향 가득한 숲길을 걷다 보면 고목에 층층이 붙어 있는 부채꼴 모양의 버섯을 종종 보게 된다. 나무 위뿐 아니라, 땅 위, 풀잎 사이에도 형형색색의 버섯을 만날 수 있다. 식탁 위에도 버섯은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가까운 마트에 들르면 아삭거림이 좋은 팽이버섯부터 구수한 된장국에 어울리는 표고버섯, 어느 요리건 잘 어울리는 새송이버섯이 입맛을 자극한다.

이처럼 버섯은 우리 일상에서 너무나 친근해 별다른 생각 없이 쉽게 지나쳐 버릴 만하다. 하지만 버섯의 기원과 지구 생태계, 그리고 인류 생존에 기여하고 있는 역할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그렇게 가벼이 여길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버섯의 기원은 지구상에 인간보다 먼저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시기는 약 1억3000만년 전 백악기 초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에 성덕왕 시대 영지를 왕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에는 식용버섯으로 송이와 표고, 약용버섯으로 복령의 주산지가 기록돼 있다. 이처럼 버섯은 아주 오래전부터 '신의 음식', '불로장생 영약' 등으로 소중히 다뤄져 왔다.

버섯은 인간이 사는 지구 생태계에서 협력자 또는 분해자로의 역할도 수행한다. 지구에는 다양한 생물과 무생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중 버섯은 생태계의 구성원으로서 식물이 광합성으로 축적한 탄수화물을 이용해 생활하면서 수분과 양분을 식물에 제공한다. 또 다른 병원균으로부터의 침투를 막아주는 등 식물과의 공생관계를 형성해 풍부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나아가 죽은 나무, 낙엽, 혹은 동물의 사체 등 각종 유기물을 분해해 토양으로 환원시켜 건전한 숲 생태계를 보전시키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 버섯은 새로운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탄소 발생을 줄이고 환경오염을 저감시키는 친환경 소재로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 유럽 등 여러 기업에서는 이미 버섯 균사체의 생물학적인 장점을 활용해 버섯 가죽, 플라스틱 대체 소재 등을 개발하고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버섯 가죽은 천연 가죽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 83%까지 줄일 수 있다. 천연 가죽 제조 과정에서 세척을 위해 사용하는 물의 양을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특히 화석연료 기반의 스티로폼 소재는 자연분해 시 50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균사체 소재는 완전 생분해되기까지 1~2년이면 충분하다.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아도 돼 연소 시 유독 가스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렇게 버섯은 일상의 식탁에서 음식의 일부라는 범위를 벗어나 깨끗한 지구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친환경 신소재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도 버섯을 수확한 뒤 남은 배지를 스티로폼을 대체하는 친환경 포장재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보급 중이다. 올해는 버섯 가죽 원단을 개발하는 기술도 연구해 특허출원을 마쳤다. 이 같은 기술이 실용화되면 버섯의 부가가치와 활용도를 높이고 환경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태초부터 인류와 함께해 온 버섯은 인간에게는 식량과 약재의 공급자로서 생태계에서는 협력자 또는 분해자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왔다. 현대사회의 큰 재앙인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인류에게 또다시 새로운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버섯, 그 희망의 메시지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