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 足足이 느끼는 황토의 맛…'맨발걷기의 성지' 입소문

2023-11-03 00:00
국내 최초·최장 황톳길 14.5km 코스 찰진 황토촉감 그대로
길게 이어진 '숲터널' 지친 심신 치유 전국서 방문객 몰리기도
맥키스 컴퍼니, 매년 10억원 들여 보수 걷기축제 등 사회공헌

등산객들이 계족산 황톳길을 맨발로 걷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바야흐로 맨발 걷기 열풍이다. 다양한 중증질환에서 회복됐다는 경험담들이 최근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확산하고 있는 덕이다. 이에 다수의 지방자치단체가 맨발 걷기길을 조성하며 맨발걷기 열풍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얼마 전 대전 계족산(해발 420m)에 다녀왔다. '맨발 걷기' 열풍을 만들어낸 원조길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조성된 계족산 황톳길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가 찾고 있었다.
 
등산객들이 계족산 황톳길을 맨발로 걷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건강에 적신호···맨발걷기를 결심하다 

사실 올여름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건강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입도 대지 않던 영양제를 찾아 먹게 됐고, 주말마다 동네 뒷산의 둘레길도 걸었다. 

그러던 어느날 TV에서 '맨발걷기가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곧바로 행장을 꾸려 대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황톳길은 장동산림욕장 입구~원점 삼거리~임도 삼거리~절고개 삼거리~원점 삼거리~장동산림욕장 입구까지 조성된 총 14.5㎞의 맨발걷기 길이다. 천천히 걸어 원점 회귀하는 코스다. 넉넉하게 5시간 정도 걸린다. 

평소 1㎞ 걷는 것도 버거워했는데, 어떻게 14.5㎞를 걸을 수 있을까, 그것도 맨발로. 걱정이 앞서 입구에 서서 발만 동동거리자, 어떤 이가 얘기한다. "일단 걸어봐요, 신발 신고 걷는 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평일이었지만, 이미 많은 이가 황톳길을 맨발로 걷고 있다. 그래, 걷다 힘들면 다시 내려오면 될 일이다. 미리 겁먹지 않기로 하고 신발을 벗는다.

계족산성을 오르지 않는 이상 황톳길은 무척 매끄럽고 부드러운 길이 지속된다. 퍽 폭신하기도 하다. 물이나 간식 등을 챙겨 산책이나 소풍을 가기에도 좋고 운동 삼아 힘차게 걷기에도 좋은 길이다. 

시원하게 뻗은 나무 사이에 길게 이어진 부드러운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다. 찰진 황토의 촉감이 그대로 전달돼 기분이 퍽 좋다. 

황톳길 초입에서 마주한 날씨는 흐리기만 했는데, 중반쯤 오르니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진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황토가 거침없이 파고든다. 다시 돌아나가야하나 고민하는 찰나, 옆에서 "빗속에서 걷는 황톳길은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며 꾄다. 그래, 이왕 이곳까지 왔으니 빗줄기를 벗 삼아 걸어보기로 한다.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이 계족산 황톳길 조성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하이힐은 안돼~계족산 황톳길을 조성하다 

묵묵히 걷고, 또 걷는다. 거센 빗줄기도 걷기 열망을 막을 순 없다. 이미 6㎞가량을 걸었건만, 600m 남짓 걸은 것처럼 몸은 가뿐한 느낌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황톳길을 처음 조성한 이가 누구일까. 계족산 황톳길을 조성한 인물은 다름 아닌 충청지역 소주회사 선양(현재 맥키스컴퍼니) 조웅래 회장이다.

조 회장이 황톳길을 조성하게 된 것은 그의 경험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2006년 친구들을 초청해 계족산에 나들이를 간 조 회장은 대략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산에서 만나기로 한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인지 일행 중 두 명이나 굽 높은 신발을 신고 온 것이다.

조 회장과 또 다른 일행은 각자의 신발을 벗어 구두를 신고 온 일행들에게 건넸다. 호기롭게 신발을 벗어줬건만, 막상 맨발로 산길을 걷는 게 쉽지는 않았다. 5시간여의 산책길을 '버텼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였다.

조 회장은 그날 밤 숙면을 취했고 다음날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평소와 달리 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몸도 한결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몸의 반응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주고 싶었다고. 

물론 처음에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돌밭을 평평하게 다지기도 했고, 황토와 마사토를 섞어 깔기도 했다. 오랜 실험 끝에 비가 쓸어내면 다시 깔자는 생각을 하면서 길 한쪽에 황톳길을 깔았다. 그렇게 계족산 허리를 빙 두른 둘레길 14.5㎞에 황톳길이 탄생했다. 
 
한 여행객이 계족산 황톳길을 맨발로 천천히 걷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전국에서 찾는 황톳길' 맨발걷기 축제·음악회도 열다  

계족산은 그야말로 에코힐링(Eco-Healing)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맥키스컴퍼니는 이곳 계족산을 찾는 이들이 지친 심신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걷기 축제와 뻔뻔(fun fun)한 클래식은 맥키스컴퍼니만의 사회공헌활동인 셈이다. 

숲은 스트레스 감소에 큰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를 줄이면 심혈관 질환, 고혈압, 우울증 등을 예방하고 건강한 생활을 촉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길게 이어진 숲터널, 그 밑에 깔린 황톳길의 장점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많은 이가 계족산을 찾기 시작했다. 

조 회장은 황톳길 유지를 위해 근처에 있는 빈 땅을 빌려 황토를 비축하고 황톳길을 전담할 부서와 직원도 배치했다. 지금도 자주 황토를 새로 깔고, 뒤엎고, 다지고, 물을 뿌린다. 조 회장이 몸담은 맥키스컴퍼니가 매년 황톳길 유지·보수에 투입하는 비용이 10억원이라고 하니 지금까지 180억원을 들여 황톳길을 관리해온 셈이다. 

어디 관리뿐인가. 많은 사람이 황톳길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2007년부터 매년 5월 ‘계족산 맨발축제’를 개최한다.

숲속 황톳길을 맨발로 걷거나 달리며 계족산의 아름다움과 문화 공연·체험의 감동을 함께 느끼게 하겠다는 조 회장의 의지에서 출발한 행사다.

세계 유일의 맨발축제인 계족산 맨발축제는 대전시가 선정한 최우수 축제에 이름을 올렸다. 

2007년부터 올해로 17년째 토·일요일마다 계족산 숲속음악회장에서 숲속 음악회 '뻔뻔한 클래식'도 연다.

울창한 숲이 무대가 되고 그 사이 비치는 은은한 햇살이 조명이 된다. 숲 전역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은 계족산을 찾은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계족산 황톳길에서는 주말(토요일, 일요일)마다 숲속음악회 '뻔뻔(funfun)한 클래식'이 열린다. [사진=맥키스 컴퍼니]
◆맨발 걷기축제, 부활 예고하다 

최근에는 맨발걷기 열풍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계족산을 찾는 방문객이 더 늘었다. 주말에 계족산에 가보면 3분의 2가 외지인일 정도다.

계족산 황톳길이 입소문을 타면서 여러 지자체들이 본보기로 삼았고, 지금은 전국 각지에 황톳길이 조성됐다.

경쟁적으로 맨발걷기 조례도 제정되고 있다. 맨발걷기를 경험해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국내 처음이자 가장 긴 계족 산황톳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계족산 황톳길을 ‘맨발걷기의 성지’로 부르기 시작했다. 

내년 5월에는 그동안 팬데믹으로 쉬었던 맨발축제가 다시 열릴 예정이다. 그동안은 맨발 마라톤이 축제의 중심이었지만, 내년부터는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하려고 고민 중이다.

실제 맨발걷기를 위해 1박 2일 체류하는 사람들이 있고, 계족산 주변에서 한 달 살기가 가능하냐는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축제를 일회성 행사로 치르기보다는 체험해보고 다시 찾을 수 있는, 말 그대로 계족산 황톳길을 ‘맨발걷기의 성지’로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 됐다고 판단한 것.

그날, 계족산 황톳길 걷기를 끝내고 내려왔을 때 만보기는 '2만5000보'를 기록하고 있었다. 등산을 제외하고 둘레길 걷기로는 생애 최고 기록이다. 다리가 붓고 뻐근할 법도 하건만 어쩐지 몸이 무척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다녀온 지 보름여가 지났다.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이는 없다"는 조 회장의 말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맴돈다.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는 요즘, 황톳길 생각이 간절하다. 계족산 황톳길에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맨발 열풍이 불면서 계족산 황톳길을 찾는 이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진=맥키스 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