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기지 않는 이태원의 눈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한산한 분위기 속 추모…홍대는 '북적'

2023-10-29 11:35

핼러윈데이를 앞둔 지난 2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시민들의 우측 통행을 유도하기 위한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작년과 달리 이태원 일대는 한산한 분위기다. [사진=최은솔 수습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1년 만에 다시 핼러윈데이를 맞은 지난 28일 저녁 이태원 일대. 발 디딜 틈도 없이 거리마다 핼러윈 코스튬을 한 시민들로 가득 찼던 지난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거리 곳곳마다 경찰, 소방대원 등이 안전 점검을 하고 있었고 코스튬을 한 시민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로 숙연한 분위기였다. 반면 마포구 홍대 일대는 주말 저녁을 즐기러 나온 젊은 사람들도 거리가 붐비면서 상반된 분위기를 보였다. 
 
핼러윈 축제 사라진 거리…우측 통행 바리케이드
지난해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핼러윈데이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주말 이태원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한산했다. 해리포터 분장을 하고 이태원역에 막 내린 한 연인은 출구를 나오면서 "이태원 맞아? 사람이 왜 이렇게 없어?"라며 놀랐다. 해밀톤호텔이 있는 골목과 세계음식특화거리는 코스튬을 한 시민들 대신 경찰과 '용산구청'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관계자들이 더 눈에 띄었다.  

이날 경찰과 구청 관계자들은 시민들 통제에 한창이었다. 해밀톤호텔 뒤쪽 거리에는 우측통행을 유지하기 위한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골목의 입구와 출구도 따로 나눴다. 비상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응급차와 약사, 간호사 등도 대기하고 있었다. 무전기를 든 경찰이 쉴 새 없이 골목을 돌며 순찰을 하고 있었고 구청 관계자들은 빨간 봉을 들고 시민들이 우측통행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한산한 분위기에 핼러윈데이를 앞둔 주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거리의 사람 중 약 3분의1은 거리 통제를 위해 나온 경찰과 구청 관계자일 정도로 시민들을 통제하는 인원이 많았다. 간간이 사신, 바야바 등 분장을 한 시민들도 있었지만 떠들썩하게 핼러윈 분위기를 즐기기보다는 조용히 거리를 걷는 정도였다.

검은 마법사 모자에 호박 코스튬을 하고 친구들과 이태원을 찾은 20대 유모씨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애도를 엄숙하게 하기보다는 기존대로 핼러윈 축제 문화를 이어가는 식으로 해보고 싶어 코스튬을 하고 왔다"고 말했다. 검정 외투를 입고 영화 '조커'의 주인공 분장을 한 20대 이모씨는 "작년 참사에 속상하고 서글픈 마음을 안고 이태원에 오게 됐다"며 "다행히 오늘은 경찰관 등이 시민들을 잘 통제하고 있어 큰 걱정 없이 잘 보내고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10·29 이태원 참사 현장이었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는 28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사진=남가언 기자]
이태원 참사 현장 중 하나였던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에는 안타깝게 희생된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추모 공간은 피해자들을 향한 시민들의 애도 목소리가 담긴 메시지로 빼곡히 차 있었다. 바닥에는 참사의 날 한 공간에 있었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시민들이 놓고 간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추모 공간이 마련된 골목 끝에는 클럽 음악이 흘러 나와 다소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골목을 지나쳐 가려던 시민들도 추모 공간을 발견하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짧게 묵념을 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예쁜 내 딸, 좋아하던 얼그레이 가져왔어. 다음엔 엄마가 만들어 줄게', '엄마, 아빠는 지금도 널 그리며 기다리고 있단다. 어서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렴' 등 유가족들이 남긴 메시지에 눈시울을 붉히는 시민들도 있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메시지를 적고 있던 20대 이모씨는 "평생을 함께 아파해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추모했다.

추모 공간을 두 딸과 아내와 함께 찾은 40대 남성 안모씨는 "(지난 참사가) 우리 아이도 당할 수 있었던 안타까운 사건이라 가족과 함께 왔다"며 "주변 상권이 침체됐다고 들어서 도움을 주고자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추모의 벽이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고 설명했다. 고등학생이라는 안씨의 첫째 딸은 "참사를 항상 기억하는 게 사회 구성원의 책임이자 의무라 생각한다"며 "이번에는 슬퍼하는 것 외 침체된 상가에 도움을 주는 식의 추모를 생각해 봤다"고 덧붙였다. 
 
강남·홍대도 순찰대 안전 점검…시민 '자율 방범' 자원
이태원 대신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지역인 서울 강남역 인근에도 경찰, 소방대, 구청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순찰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만 술집 거리는 평소보다 한산했고, 핼러윈 코스튬을 한 시민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순찰을 돌던 서초구청 관계자는 "두 개 조직으로 나눠 실내와 실외 인파가 몰리는 걸 점검하고 있다"며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평소 주말보다 인원이 적은 것 같다"고 답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친구들과 핼러윈데이를 즐기러 왔다는 또 다른 20대 이모씨 역시 '조커' 분장을 하고 강남역에 있는 한 주점을 찾았다. 그는 "분당에 살아서 지하철 막차를 타고 돌아갈 생각이라 강남으로 놀러 왔다"며 "작년 이태원 참사도 있었고 강남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집 근처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핼러윈데이를 앞둔 지난 28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일대가 주말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사진=남가언 기자]
반면 마포구 홍대 일대는 이태원, 강남 일대와는 상반된 분위기였다. 홍대 전체 거리가 주말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태원 대신 홍대로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한 경찰들과 구청 관계자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홍대입구역 출구부터 KT&G 상상마당을 지나 상수역으로 내려가는 길까지 경찰이 순찰하고 있었고 통제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홍대입구역 지하철역부터 유관기관이 합동해 시민들이 안전하게 역사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서울교통공사 조끼를 입은 관계자들은 "홍대입구역 9번 출구는 '출구', 8번 출구는 '입구'입니다. 나가실 분은 9번 출구로 나가주세요"라고 외쳤다. 우측 통행을 할 수 있도록 계단 바닥에는 노란색 유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역사 안에서도 계속해서 "역사가 매우 혼잡하니 이동 시 우측 통행 부탁합니다"라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9번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오자 '자율 방범'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시민들이 보였다. 마포구 자율방범단체를 통해 이날 자율 방범을 나오게 됐다는 60대 한모씨는 "시민들 안전을 위해 자원해서 봉사하러 나왔다"고 설명했다. 119 의용소방대 조끼를 입은 한 60대 주부 정모씨는 "작년 이태원 참사 피해자 중에는 내 딸과 또래인 아이들도 여러 명 있었다고 들었다"며 "남 일 같지만은 않아서 오늘은 이렇게 의용소방대에 자원해 시민들 안전에 보탬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홍대거리로 진입하자 골목이 좁아지면서 사람들이 더 붐볐다. 홍대에도 시민들이 우측통행을 할 수 있도록 가운데 펜스가 쳐져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은 펜스를 따라 우측통행을 지키는 모습이었다. KT&G 상상마당 앞 거리에는 마포소방서, 경찰, 마포구 핼러윈 합동상황실 등이 마련돼 있었다.

30대 남성 김모씨는 "올해 또 작년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경찰, 소방서 등에서 많은 인력이 나와 질서 유지를 잘 해줘서 놀랐다"며 "설령 '보여주기식'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인력을 동원해 통제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시민들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되고 좋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