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탈중국 생산·판매 거점 인도 … 돌다리만 두드리는 일본

2023-11-01 06:00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가을하늘이 티 없이 맑은 요즘이다. 바람도 선선하여 산책하기도 딱 좋다. 이런 때일수록 그동안 못했던 걷기 운동이라도 해야지 하면서 집 근처 조그만 시냇가 길을 찾아 발걸음을 뗀다. 필자가 요즘 자주 나가는 관악산 기슭의 한 대학에서는 가을의 햇빛과 하늘, 그리고 시원한 바람과 어린 학생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생동감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도 이제 조금씩 울긋불긋 물드는 단풍이 찾아오고 있다. 길가에 떨어진 노란 낙엽이 계절의 변화를 더욱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좀더 지나면 관악산의 차가운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이 엄습해 올 것이다. 계절의 흐름 속에서 지금처럼 좋은 순간은 참으로 짧다. 그래서 이 좋은 순간이 더욱 아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필자가 이렇게 계절 타령을 하는 것은 감상에 젖기 위함이 아니다. 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서다.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원은 몇 년 전부터 인도의 뉴델리에 현지 사무소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내어 올해 정식으로 사무소 인가를 받아 활동하고 있다. 현지 사무소 설립을 위해 파견된 직원들은 여러 가지 애로를 호소하였는데 첫째는 매우 열악한 대기질과 이로 인한 건강문제였고, 둘째는 인도 정부 규제의 불확실성이었다. 인도의 나쁜 대기질은 매우 악명 높다. 현지 사무소장은 늘 인도 대기의 오염물질 농도를 사진으로 보내면서 현지 사정의 열악함을 호소하였다. 우리나라도 과거 검은 매연을 내뿜는 오래된 버스와 각종 자동차가 뒤엉켜 숨쉬기조차 힘든 도로를 걷고 달렸던 경험이 있다. 이제 겨우 이러한 대기오염으로부터 벗어났다. 인도는 앞으로 얼마나 숨 막히는 공기오염에 더 시달려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짧으나마 도심에서도 맑고 깨끗한 가을하늘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인도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사무소 개소를 인정받는 데까지는 예상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어떤 조건을 갖추면 언제까지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기다리는 것 밖에는 없었다. 인도에는 정부 규제의 불확실성이 아직 높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도에 현지사무소를 개소한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탈중국 현상의 가속화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인하여 미국의 대중견제가 강화되고 있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도 점차 낮아지고 있고 중국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저렴한 인건비 등 중국의 제조거점으로서의 장점도 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중국 시장 내에서의 경쟁이 심화되어 시장으로서 중국의 이점도 과거에 비해 낮아지고 있다. 이처럼 생산거점으로서, 그리고 판매시장으로서 중국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면서 인도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한껏 높아지고 있다. 둘째는 인도의 성장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인도의 1인당 GDP는 2600달러로 중국에 비해 소득수준이 매우 낮다. 소득수준이 낮기 때문에 인건비 등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소득수준이 낮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많다.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한 것은 단점이지만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투자할 여지가 많아서 투자 주도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 인구도 많다. 14억을 넘는 인구는 세계 최대이다. 평균 나이도 30세 미만으로 매우 젊다. 최근의 경제성장세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인도와 같은 거대경제가 6~7%의 성장률을 달성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인도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인도는 2014년부터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통해 인도를 세계 제조업의 거점으로 육성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 미국 등 주요국 기업이 인도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다. 또 한차례 인도 붐이 불고 있다. 이것이 인도사무소를 설립하게 된 배경이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대로 사무소 설립에는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다. 인도 정부 규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경험이다.
이처럼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인도는 과연 중국을 대체하는 글로벌 제조 및 판매의 중심국가로 발전해 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이웃 나라 일본의 사례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 기업들의 인도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매우 크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가 2022년에 아시아 지역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향후 1~2년에 중국사업 확대를 검토한 기업은 약 30%였으나 인도에 대해서는 70%의 기업이 사업확대를 검토한다고 응답하였다. 제조업을 대상으로 한 국제협력은행(JBIC)의 조사에서도 단기(향후 3년 정도)와 장기(향후 10년 정도)의 유망한 사업전개 대상국가로서 인도가 1위였으며 중국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기업의 인도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탈중국 현상의 가속화와 인도의 성장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그 배경이 됨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와 달리 일본 기업의 인도 직접투자와 교역은 그리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의 대인도 해외직접투자는 2022년에 4709억엔으로 2021년에 비해 오히려 감소하였다. 해외직접투자의 추세를 보더라도 증가추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인도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수도 2022년에 1400개사였으며 그 추세도 변화가 없다. 오히려 2019년을 정점으로 진출 기업 수가 약간 감소하고 있다. 일본과 인도 간의 인적교류를 중·일 간의 그것과 비교하면 두 나라 간 교류의 실태를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일본 방문자 수(’19)는 인도 약 17.5만명, 중국 959.4만명, 재일 유학생 수(’22)는 인도 1692명, 중국 11만2243명, 일본체류 인도인 수(’22)는 4만752명, 중국인 수(’22)는 74만4551명, 해당국 체류 일본인 수(’22)는 인도 8145명, 중국 10만2066명이다. 양국 간 인적 교류는 최소 10배 이상 최대 70배 가까이 중국이 많다. 일본에게 있어서 인도는 중국을 대체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들의 인도 진출은 향후 크게 증가할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도 낙관만은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소속된 연구원과 달리 기업들은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직도 인도 정부에게 현지 비즈니스 환경의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주마다 다른 복잡하고 불투명한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한 것도 진출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인도 시장에서의 경쟁도 격화되고 있어서 시장으로서 매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사항의 하나이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지난 7월 약 100명의 경제인을 대동하고 인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처럼 거대한 규모의 경제인과 함께 인도를 방문한 것은 과거 사례가 없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의 인도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여기에서 스가 전 총리는 모디 총리에게 인도의 비즈니스 환경 개선을 주문했다고 한다. 특히 복잡한 규제에 따른 불확실성이 투자를 꺼리게 하는 중요한 요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특징은 돌다리를 두드리고도 건너지 않는다는 농담이 있다. 지나친 신중함이 일을 그르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이다. 인도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미국, 싱가포르 UAE 등 여러 국가들의 인도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은 현재 돌다리를 두드리고 있다. 2014년 모디 총리가 등장했을 때에도 돌다리를 두드렸다. 그리고 일본은 그 돌다리를 건너지 않았다. 이번에 또 다른 인도 붐이 일고 있다. 일본은 과연 인도를 중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생산과 판매의 거점으로 판단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번에도 돌다리만 두드리고 건너지 않을까? 재미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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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