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본격적인 협력을 시작한다. 삼성SDI가 현대자동차와 사상 처음으로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다. 두 그룹의 총수가 협력을 위해 회동한 지 약 3년 만의 일이다. 이번 계약을 단초로 향후 양사 간 전기차 배터리 동맹이 보다 단단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이날 현대자동차와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 체결에 대한 내용을 공시했다. 오는 2026년부터 2032년까지 7년간 현대차의 차세대 유럽향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를 공급한다는 게 핵심이다. 양사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공급 계약을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급 물량은 전기차 50만대분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번 계약을 통해 삼성SDI는 새로운 고객사를 확보하고, 향후 협력 확대 기회를 열면서 추가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또 그간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사용해왔던 현대차는 각형 배터리를 통한 배터리 폼팩터(외형) 다변화가 가능해졌다. 삼성SDI는 개발 중인 6세대 각형 배터리 P6를 공급할 예정이다.

P6는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양극재의 니켈 비중을 91%로 높이고, 음극재에 독자적인 실리콘 소재를 적용해 에너지 밀도를 극대화한 제품이다. 삼성SDI 헝가리 공장에서 생산해 현대차의 유럽 현지 공장에 공급한다.
 
양사는 앞서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수석부회장)의 만남을 계기로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개발과 관련한 협력을 진행해 왔다. 정 회장은 자동차용 배터리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방문했고, 전기차 배터리 개발 및 생산 현장을 둘러보며 이 회장과 차세대 배터리 사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삼성과 현대차 두 그룹의 총수가 사업을 목적으로 만난 전례가 없었고, 정 회장의 경우 이전까지 삼성 사업장을 방문한 사례 자체가 없어 당시 두 사람의 회동은 업계에서 주목을 받았던 바 있다.
 
이후 삼성SDI와 현대차는 전기차 배터리 관련 기술 교류와 선행과제 수행 등을 이어오며 상호 이해도를 높인 끝에 계약 체결이라는 성과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양사는 향후에도 차세대 배터리 플랫폼 선행 개발 등 협력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사장)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는 현대차와 전략적 협력의 첫발을 내디뎠다"며 "삼성SDI만의 초격차 기술 경쟁력, 최고의 품질로 장기적인 협력 확대를 통해 현대차가 글로벌 전기차 시장 리더십을 강화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SDI는 최근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양한 완성차업체와 협력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인 스타플러스 에너지는 두 번째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건설할 예정이다.
 
현재 공사 중인 1공장은 33기가와트시(GWh) 규모로 2025년 1분기, 2공장은 34GWh 규모로 2027년 초 각각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두 공장 모두 전기차용 각형 배터리를 생산한다. 이를 통해 ‘스타플러스 에너지 코코모 기가팩토리’를 완성한다.
 
앞서 제너럴모터스(GM)와의 협력 관계도 구축했다. 2026년 양산을 목표로 연산 30GWh 이상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미국 인디애나주 뉴 칼라일에 짓기로 했다. 이를 위해 양사는 약 30억 달러(약 4조원) 이상을 투자한다.
 
한편 삼성SDI는 2027년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수원연구소 내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준공하고, 시제품을 생산하는 등 양산 기술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