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온갖 비리 의혹에도 지지세 굳건한 '이재명 정치'의 비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차기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은 거의 100%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당 내외 지지세가 굳건하다. 그는 자기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을 지금까지는 용케도 잘 극복하고 있다. 국회에서 체포 동의안이 가결돼 구속될 위기에 처했지만 영장 심사 결과 기각돼 구치소 행을 피했다. 영장이 기각돼 오히려 정치적 입지가 강해졌다. 민주당 내에서도 그렇고 고정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지난 11일 실시된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56%대 39%라는 큰 득표율 차이로 승리했다. 이 역시 이 대표가 유지하고 있는 굳건한 지지세의 반영이자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대표는 현재까지 6개 사건 10개 혐의로 기소됐다.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 수사와 재판을 받느라 검찰청과 법원을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제1야당 대선 후보를 지냈고 현직 당 대표인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했던 적은 없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강고한 지지세를 유지하고 있다. 미스터리에 가까운 일이다. 그 이유가 뭘까?
'정치와 도덕은 별개' <군주론> 그대로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이나 방식에 대한 반감이 민주당과 이 대표 지지의 주요 원인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 민주당 지지세가 높아지는 현상은 자연스럽지만 반드시 이 대표 지지도도 높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더라도 이 대표 아닌 다른 사람이 당 대표를 맡고 있고 온갖 비리 의혹에 휘말려 있다면 그 사람이 그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처럼 강한 지지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이 대표에 대한 강고한 지지세는 민주당 지지세와는 별개로 이 대표 개인의 요인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어떤 요인이 작용했을까? 이 대표가 여러 비리 의혹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남다른 국정 운영 철학이나 리더십을 가졌기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그가 국민의 폭넓은 지지와 공감을 얻을 만큼 원대하고 체계적인 국정 철학을 제시했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 분열을 극복하고 국가를 다시 한번 부흥시킬 뛰어난 정치 지도력을 가졌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국정 철학이나 리더십 외에 다른 요인이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강한 지지세를 유지하게 하는 이유가 됐을 것이다. 그 요인으로 그의 독특한 정치 방식과 행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대표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런 정치 방식이 지지층과 일부 중도층에 먹혀들어 강력한 지지세를 형성하게 된 게 아닐까 한다. ‘현실주의적’이라고 한 것은 그의 정치 행태가 도덕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이익이 된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대표는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스트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 행태를 가리킨다. 500년 전 <군주론>이라는 책을 쓴 이탈리아 정치가 마키아벨리에서 따온 말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 ‘정치인에게 필요한 최고 자질은 역경을 헤쳐나가는 능력’이라며 ‘그 능력을 발휘하려면 자비심, 신의, 인간성, 정직성, 양심 같은 도덕에 얽매여선 안 된다’고 했다. 이런 도덕을 좇다가는 험난한 세상을 돌파해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가능하면 그런 도덕을 갖춘 듯 보이게 하라’고 했다. ‘교활함과 속임수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필요할 때는 그 도덕과 정반대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보통 때는 도덕적인 듯 행동하되 필요한 상황에서는 두 눈 딱 감고 도덕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국가를 존망의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 개인의 사리사익을 위해서 도덕을 경시해도 좋다는 게 결코 아니다. 그런데 이 말이 잘못 전해져 마치 자기 욕심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좋다는 말로 변질됐다.
마키아벨리는 교활함과 속임수의 사례로 몇 가지를 들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위대한 거짓말쟁이가 되라’와 ‘약속은 불리하면 지키지 말라’이다. 그는 거짓말을 하되 남이 거짓말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교묘하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을 ‘위대한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마키아벨리는 약속에 대해서도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약속할 당시와 상황이 바뀌었다면 지킬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약속 위반을 그럴듯하게 정당화시킬 핑곗거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사람들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기 쉽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사건이 터지자 ‘윤석열이 대장동 몸통’이라고 역공세를 폈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수사 당시 검사이던 윤 대통령이 대장동 자금책이자 대출 브로커인 조모씨의 부탁으로 대장동 대출 비리를 유야무야해 ‘결과적으로 대장동 사업의 종잣돈을 지켜줬으니’ 윤 대통령이 대장동 몸통이라는 주장이다. 윤 대통령이 조씨에게 커피를 타줬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당시 조씨를 수사한 검사는 윤 대통령이 아닌 다른 검사였고, 커피를 타준 사람도 검찰 직원임이 최근 드러났다.
설사 윤 대통령이 커피를 타 주고 불법 대출 수사를 유야무야한 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갖고 ‘윤석열이 대장동 몸통’이라고 할 일은 결코 아니다. 흉악범이 날뛰게 된 것을 그 흉악범을 낳은 어머니 탓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아직도 그 주장을 펴고 있다. 그 결과 이 대표 지지자들에게 ‘대장동 몸통은 이재명이 아니라 윤석열’이라는 믿음을 심어줬다. 중도층 사람들에게는 ‘이재명이 대장동 몸통’이라는 인식을 흐리게 만들었다. 아무리 거짓말이라도 자꾸 들으면 솔깃해지는 게 사람들 마음이다.
법정서 측근 끌어안는 모습 연출
이 대표는 지난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8월 대장동 사건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러 가면서는 ‘“영장을 청구한다면 제 발로 (걸어가) 영장 심사를 받겠다”고 또다시 불체포 특권 포기를 천명했다. 그러나 막상 영장이 청구돼 국회에서 체포 동의 여부를 투표하게 되자 민주당 의원들에게 부결시키라고 했다. ’윤석열 검찰의 정치공작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불리하면 약속은 안 지켜도 되고 그 핑곗거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스트 방식 그대로이다.
이 대표는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사건 등을 다룬 공판에서였다. 이 대표는 재판이 끝날 무렵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은 정진상씨(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에 대한 ‘신체 접촉 허가’를 재판부에 요청했다. “(정진상씨의) 보석 조건 때문에 제가 전혀 접촉할 수 없다”며 “재판이 종료되면 대화하지 않을 테니 신체접촉을 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 한번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재판부가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고 했고, 이 대표는 재판이 끝나자 정씨의 등을 두드려주고 끌어안은 뒤 악수했다.
재판부가 이 대표 요청을 들어준 것은 부적절하다. 사사로움에 이끌리는 듯 보여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정씨를 안아줬다. 왜 그랬을까? 측근인 정씨에게 인간적인 미안함을 정말로 갖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대표의 속마음이 어떻든 이 대표가 자비롭거나 인간적인 모습을 정씨와 지지자들에게 보였다는 점이다. 그런 미덕을 과시하는 것만으로도 이 대표는 정씨와 지지자들의 환심을 살 수 있다. 정씨에게는 끝까지 이 대표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는 마음을 갖게 하고, 지지자들에게는 ‘인간적인 이재명’이라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
다음 대선 전 혐의 하나라도 유죄 확정되면 '끝'
이 대표의 정치 방식은 최소한 현재까지는 통하고 있다. 그를 둘러싼 여러가지 비리 의혹에 대해 지지층에게는 검찰 수사가 조작이고 억지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이는 지지층의 지지를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중도층에는 검찰 수사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을 키우게 했다. 이는 이 대표에 대한 반감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대표는 마키아벨리스트식 정치로 비리 의혹을 돌파해 나가며 지지층의 지지는 더욱 굳게 하고 중도층은 한발짝 더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그 결과 나타난 게 강고한 지지세이다.
문제는 이 대표 방식이 재판에서도 통할 것이냐이다. 이 대표는 10개 혐의 중 어느 하나에서라도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진다. 피선거권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대선 출마가 불가한 유죄 확정 시한은 차기 대선일인 2027년 3월 3일이다. 이 대표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더라도 선거일 이전에 유죄가 확정되면 그 순간부터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동안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 등 전체 14명 중에 1명을 뺀 전원이 교체된다. 교체되는 13명 중 10명은 2024년 12월까지, 3명은 2026~2027년에 바뀐다. 2024년 12월이면 차기 대선으로부터 대략 2년 3개월 전이다. 최소한 대선 전 2년 3개월은 윤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과반수를 이루게 된다. 과반수이면 기존 판례도, 하급심 판결도 바꿀 수 있다. 1, 2심에서 이 대표에게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대법원에서 뒤집힐 수 있다. 이 대표가 마키아벨리스트식 정치로 굳은 지지세를 유지하는 데는 성공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운명은 판사 손에 달려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