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재벌 2세 '아들'들도 뛴다...'라이벌' 롯데·신세계, 3세 경영 수업 판박이
2023-10-13 06:00
오너 3세들은 첫 직장으로 창업주가 설립한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를 선택해 실무를 배우며 차근차근 후계자 면모를 갖춰 가고 있다. 공통분모는 더 있다. 유력한 차기 후계자로 지목되는 장남에게 아직까지 그룹 주식을 1주도 증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로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하고 승계 작업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롯데 3세인 신유열 상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노무라증권으로 2008년부터 2020년까지 12년간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이후 일본 롯데홀딩스에 입사한 뒤 3년 만에 임원으로 초고속 승진하며 차근차근 차기 후계자로서 그룹 내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는 아버지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승계한 궤적과 비슷하다. 신동빈 회장 첫 직장도 노무라증권이었다.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8년간 노무라증권에서 일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일본롯데에 입사한 나이가 34세로 같다. 신유열 상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미국 컬럼비아대 MBA 과정을 밟기도 했다.
신 상무는 올해 들어 경영 보폭을 넓히며 차기 후계자로서 입지를 굳히는 모양새다. 지난해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LSI)에 아버지 신동빈 회장과 함께 공동 대표로 선임된 데 이어 올해는 일본 롯데파이낸셜 대표에 이름을 올렸다.
신 회장 복심으로 알려진 고바야시 마사모토 대표가 사임하자 그 빈자리에 신 상무가 앉은 것이다. 이는 롯데그룹 금융 계열사를 장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 재계 공통된 견해다. 롯데파이낸셜 지분 51%를 보유한 LSI는 핵심 투자회사이자 일본 롯데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이다. 호텔롯데 대주주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롯데 주력 계열사인 유통 계열사에서도 주요 역할을 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신 상무는 지난달 신동빈 회장의 베트남 출장길에 동행하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개장식에 참석했고 테이프 커팅식에도 김상현 롯데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과 나란히 참여했다.
롯데는 올 초 이훈기 ESG경영혁신실장(사장) 산하 조직으로 '미래성장TF(태스크포스)'를 롯데지주와 롯데홀딩스, 한·일 양국에 출범시키고 가동 중이다. TF는 '뉴롯데'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한·일 롯데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다만 재계에서는 신 상무에게 승계하기 위한 작업을 하는 조직이란 시각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신세계 오너 3세인 정해찬씨도 다른 회사에서 사회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손자이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장남인 정해찬씨는 올 5월 제대한 뒤 신세계 입사 대신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삼정KPMG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했다. 부서는 딜어드바이저리 5본부로, 주로 중소·중견기업 관련 딜 자문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그는 2018년 대학 방학 기간에 신세계그룹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도 있다.
아버지의 경영 수업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모습이다. 실제로 정용진 부회장은 1994년 한국후지쯔 유통사업부와 삼성물산에서 1년간 근무한 바 있다. 이후 신세계백화점에 입사해 후계자 수업에 들어갔다. 현재 정해찬씨는 삼정KPMG에서 인턴 근무를 마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국 동부 명문 사립대인 코넬대 호텔경영학을 졸업했다. 정씨가 졸업하면서 신세계그룹 3대가 모두 아이비리거가 됐다. 할아버지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은 컬럼비아대를 나왔고, 아버지 정용진 부회장 역시 아이비리그인 브라운대를 졸업했다.
신세계는 삼성가로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장남인 정해찬씨가 후계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다. 이명희 회장이 지난달 단행한 임원 인사에서 직접 칼을 휘두르며 건재함을 과시한 만큼 3세인 정씨는 아직 그룹 내 존재감이 미미한 상태다.
재계는 롯데와 신세계 오너 3세가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것을 놓고 승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가 승계를 당연시하던 시대는 지났다. 오너 일가도 경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내부 조직을 통솔하기 쉽지 않다"면서 "승계 과정에서 잡음을 없애기 위해 아버지 회사 대신 회계법인이나 유통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회사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것이 최근 경영 수업 트렌드다. 경력을 인정받고 입사하면 내부에서도 빠르게 조직 장악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