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 전쟁이어 이·팔 전쟁까지…산업계 '리스크 장기화' 초긴장

2023-10-11 05:00
러 원유 수입 중단...중동산 70% 달해
고유가 지속 땐 정유·석화업계 타격 커
작년 발효 한·이스라엘 FTA에도 찬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의 전쟁이 '신중동전쟁' 위기로 고조되면서, 우리 산업계도 초긴장 상태에서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과 이슬람 시아파 맹주 이란의 대리전으로 분쟁 지역이 확산하면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10일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對)중동 원유 수입 비중은 2022년 한 해 동안 전년 대비 7.6%p(포인트) 증가한 67.4%를 기록했다. 

대중동 의존도가 심화하고 있는 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러시아산 원유 도입이 중단된 영향이 크다. 여기에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 때문에 2020년부터 값싼 이란산 원유 수입길이 막히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UAE 등에서 들여오는 원유 비중이 높아졌다.

올해 1분기에도 대중동 원유수입 비중은 70.2%를 기록한 상황이라 확전 시 중동유 등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국내 주요 기업들의 비용 부담도 커진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경제 원유의존도(GDP 1만 달러당 원유 소비량)가 5.70배럴로 1위다. 이는 일본(2.36배럴) 중국(3.49배럴)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국제 유가 상승 시 상대적으로 비용 상승 압력이 더 크게 작용하는데, 특히 정유와 화학 업종에서 큰 타격이 예상된다. 원유가 주 원자재인 정유 산업은 국제유가가 오르면 원가상승률이 같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빅4'는 원유 70% 안팎을 중동에서 수입한다.  유가 상승으로 재고 평가 이익이 발생해 일시적으로 좋을 수 있지만, 고유가가 지속되면 정유 수요가 줄어 정제 마진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유사로부터 석유화학제품 원료인 나프타(납사)와 콘덴세이트를 조달받는 석유화학업체들의 수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롯데케미칼과 SK지오센트릭, LG화학, 금호석유화학 등은 국내 정유사뿐 아니라 중동에서 원료를 일부 납품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들 회사가 만드는 합성수지는 이스라엘로 수출하는 주요 물품이기도 하다. 

앞서 LG화학은 5월 이스라엘 아쉬도드 담수화 프로젝트에 RO멤브레인(역삼투압) 단독 공급업체로 선정된 바 있다.  LG화학은 또 두산그룹과 손잡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서 해수담수화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다.

LG화학 관계자는 "현재까지 특이사항은 없으나 사태에 예의주시 하고 있다"며 "담수화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이스라엘 에이전트를 통해 판매하고 있어 현지에 나가 있는 직원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한·이스라엘 자유무역협장(FTA) 발효(지난해 12월)로 기대를 모았던 양국의 무역확대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있다. 한·이스라엘 FTA는 한국이 중동 국가와 맺은 1호 FTA다. 95% 이상 품목의 관세가 철폐됐다.

실제 올 1월 4.3%(전년 동월 대비)였던 중동 수출 증가율은 8월 11.5%까지 뛰었다. 전체 수출이 지난해 10월부터 올 9월(잠정치)까지 12개월 연속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중동을 중남미와 유럽연합(EU)과 함께 3대 전략 시장으로 지정한 상황"이라며 "정유·화학 업계뿐만 아니라 수출 다변화를 노리고 있던 자동차 및 차부품 업계에도 타격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아쉬도드(Ashdod) 담수화 프로젝트 현장 [사진=LG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