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된 리모델링] 더 깐깐해진 리모델링 안전기준··· '내력벽 철거' 논란도 하세월

2023-10-09 18:04
수평증축도 2차 진단 등 의무화 예고
여건 악화에 사업 철회도···소송까지
"다음 절차 진행 못하고 좌초 단지 늘 것"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전경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1기 신도시 특별법·서울시 신속통합기획 등 재건축 관련 활성화 정책이 속속 나오는 것과 달리, 리모델링은 오히려 안전진단 강화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등 상반된 흐름을 타고 있다. 이처럼 리모델링 시장에 ‘찬바람’이 예상되면서 철회를 하거나 주민 간 갈등을 겪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에 우후죽순 추진되던 리모델링 사업이 사업성이 좋은 주요 지역이나 대형면적대 소규모 단지 등 일부 단지만 추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9일 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근 안전진단 강화‧해체공사 구조검토 강화 및 절차 개선‧현장점검 강화 등 내용이 담긴 ‘공동주택 리모델링 안전기준 개선 방안’을 25개 자치구에 전했다.
 
해당 개선 방안 등에 따르면 앞으로는 수평증축 리모델링의 경우에도 수직증축과 마찬가지로 2차 안전진단을 실시하도록 할 방침이다. 수평증축은 기존 아파트 건물을 수평으로 늘리는 방식으로 비교적 안전성 확보가 수월해 층수를 높이는 수직증축과 달리 1차 안전진단만 통과하면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으나 이번 방안으로 문턱이 보다 높아진 셈이다. 
 
이동훈 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최근 서울시에서 리모델링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추진 단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리모델링 사업 철회 등이 가시화되는 움직임이 적을지라도 내부적인 반대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리모델링의 경우 조합 설립 동의율(66.7%)를 모은 뒤 다시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하려면 75% 동의율이 필요한데 이를 넘지 못하고 사실상 좌초하는 단지들이 많이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리모델링을 철회하거나 주민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단지도 있다. 송파구 송파동 거여1단지는 올해 3월 부동산 경기 침체, 이자 부담 심화와 내홍 등 복합적인 이유로 조합 설립 3개월 만에 리모델링 사업을 철회했다. 재건축 바람이 거세진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기존에 추진 중인 리모델링 사업을 접는 경우도 나온다. 2021년 총 27개 단지로 출범한 평촌 리모델링연합회에서는 은하수 마을 청구아파트와 샘마을대우·한양아파트가 연합회를 탈퇴했고, 최근 고양 일산의 일부 리모델링 추진 단지도 사업 철회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대치2단지 리모델링 조합은 최근 법원으로부터 시공사업단에 112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는 등 소송 리스크가 현실화된 경우다. 기존 15층 1758가구를 최고 18층 1988가구 규모로 짓는 대치 2단지 리모델링 사업은 공사비가 5400억원에 달해 강남권 최대 리모델링 단지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수직 증축 공법이 부적합을 받으면서 사업이 표류하게 됐고, 조합이 시공 계약 해제를 의결한 바 있다. 

리모델링 업계의 숙원 중 하나인 ‘내력벽 철거’에 대한 결론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것도 리모델링 사업 활성화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내력벽은 건물 하중을 견디고 분산하도록 만든 벽으로, 주택법 시행령에 따르면 가구 간 내력벽 철거는 금지돼 있다. 무분별한 내력벽 철거로 인한 건축물 안전성 저하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내력벽 철거가 없을 경우 다양한 평면 구성과 구조 설계가 힘들어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설계로 변경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특히 소형 면적대가 많은 곳은 설계 변경이 더욱 어렵다. 리모델링 업계에서는 대체 내력벽 등을 충분히 증설·보강한다면 가구 간 내력벽을 철거해도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리모델링 사업 추진을 둘러싼 여건이 좋지 않아지면서 업계 전문가들은 용적률이 250%를 넘거나 사업성이 높은 대형면적대 소규모 단지 등 일부에서만 리모델링을 선택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가구 수를 늘리고 용적률을 높여도 재건축·재개발과 달리 임대주택을 짓지 않아도 돼 일부 사업지의 경우 오히려 재건축 사업보다 사업성이 높다는 평가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푸르지오 리모델링 조합은 리모델링을 위한 안전진단을 진행 중이다. 해당 단지는 리모델링 사업 완료 시 기존 237가구에서 29가구 늘어난 266가구 규모로 탈바꿈한다. 반포푸르지오가 리모델링을 택한 이유는 사업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용적률이 283%에 달하는 소형 아파트는 재건축을 하기에는 사업성이 떨어진다. 2000년 준공이라 아직 재건축 연한(30년)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리모델링을 하면 사업을 보다 일찍 시작할 수 있으며 용적률 또한 완화받을 수 있다.
 
리모델링의 경우 주거 전용면적 대비 30%(85㎡ 이하는 40%)까지 확장해 용적률을 높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앞서 리모델링을 진행한 송파구 오금아남아파트는 이를 최대한 활용해 용적률을 283%에서 432%까지 끌어올리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강남권 소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사례도 많다. 강남구 역삼동 대림역삼아파트(129가구)와 서초구 잠원 강변아파트(360가구)는 각각 조합설립 인가를 받고 시공사 선정 절차를 진행 중이며 강남구 대치동 대치1차현대아파트(120가구)는 지난 4월 강남구청에서 수직증축 리모델링사업 최종 허가를 획득하며 수직 층축을 추진 중이다.
 
이동훈 정책법규위원장은 “강남 지역 등을 중심으로 소규모 아파트 다수가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며 “재건축을 통해 사업성을 늘리기 어려운 소규모 단지들은 리모델링을 통해 사업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