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人사이트] "공장 안에 사람이 없어도"···권영수 LG엔솔 부회장이 '스마트팩토리'에 사활 건 이유

2023-09-23 05:00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스마트팩토리 구축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권 부회장은 올해 첫 현장 일정으로 스마트팩토리 점검에 나섰고, 미국 미시간주 공장에도 들러 스마트팩토리 전환 상황을 꼼꼼히 챙겼다. 권 부회장이 스마트팩토리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간 LG에너지솔루션은 대규모 리콜 사태와 영업 기밀 유출 등 여러 사건에 연루되면서 품질 안정성과 보안성을 높여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29일 'DX(디지털 전환) 페어'를 최초로 열었다. 이 자리에서 최신 기술로 제조 공정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린 다양한 우수 사례가 발표됐다.

DX 페어는 권 부회장이 지난 1월 임직원에게 스마트팩토리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 불과 7개월 만에 열린 행사다. 올해 신년 간담회에서 권 부회장은 "공장 안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개념은 아주 낡고 잘못된 사고"라며 "전극 공정에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할 것"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권 부회장은 전기차 배터리 화재로 대규모 리콜 사태가 진행되던 2021년 말 LG에너지솔루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취임 초부터 품질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꼽을 수밖에 없던 배경이다. 

권 부회장은 과거 LG디스플레이 사장 시절부터 '맥스캐파 민로스'(생산능력을 최대로 늘리고 불량을 줄이는 것)라는 경영철학을 내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제품을 일정한 품질로 생산성 높게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이 배터리 사업에서는 스마트팩토리 구현으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스마트팩토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한 공장 자동화가 아니라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도입해 공장 가동률과 수율(생산제품 중 양품 비율)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현재 배터리 생산은 '경험' 기반의 양산 능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반도체·디스플레이보다 자동화율이 낮다. LG에너지솔루션이 벤치마킹한 독일 지멘스 암베르크 공장은 모든 생산 공정을 데이터화해 위험 요소를 차단하고 불량 발생을 최소화해 '꿈의 공장'으로 불린다. 불량품은 제품 100만개 가운데 10개 미만으로 전해졌다.

권 부회장의 스마트팩토리 관련 최종 목표는 LG에너지솔루션 생산공장의 표준화된 생산 프로세스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오류 발생 시 대처 방법의 표준화, 제품 공정의 매뉴얼 통일 등이 이뤄진다면 스마트팩토리를 통해 본사에서 전 세계 공장을 제어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개별 공장별로 운영될 때보다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적어진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영업기밀 유출 사건으로 고초를 겪고 있다. 지난달 LG에너지솔루션 전직 직원 정모씨가 배터리 기술뿐만 아니라 단가, 공정 내용 등 상당한 영업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 씨는 본인의 집과 휴가지에서 회사 내부망에 접속해 자료를 빼낸 것으로 조사돼 회사의 보안 관리에 구멍이 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권 부회장이 스마트팩토리 기술 강화 및 인력 확보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다.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LG에너지솔루션이 집행한 연구개발비는 4707억원으로 전년 동기(3784억원) 대비 24.4% 증가했다. 스마트팩토리 구축과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올린다는 방침이다.

지난해에는 인사철이 아닌 2월과 8월 스마트팩토리 조직역량 강화를 위한 임원급 인사를 단행했다. 세계적 AI 석학인 변경석 전 엔비디아 데이터 분석가를 영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변경석 LG에너지솔루션 CDO(최고디지털책임자) 전무는 배터리 불량 탐지를 위해 AI와 데이터 기반의 지능화된 솔루션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사진=LG에너지솔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