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마련 나선 2030-르포] 2030 경매열기 '후끈'…"반값에 내집마련 기회"

2023-09-05 18:33
유찰된 아파트에 58명 몰리기도…8월 서울 2030 경매 매수인 전체 35%

5일 오전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경매 입찰법정 풍경  [사진=아주경제 DB]

"좋은 물건인 것 같아서 회사에 하루 연차 내고 왔는데 처음이라 떨리네요. 경매로 내집 마련에 꼭 성공하고 싶어요."

5일 경기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경매 법정에서 만난 백모씨(32)는 "고양시에 거주하는데 본가와 거리도 가깝고 가격이 괜찮은 물건이라 경매에 도전하러 와봤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입찰 시간 30~40분 전부터 긴장된 표정으로 입찰표를 몇 번이고 확인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또 다른 여성 A씨(31)도 "처음 참여해봐서 입찰표 작성법이 헷갈리는데, 도장 하나 찍는 걸 빠트린 것 같다"며 초조해했다. 

이날 법정에는 입찰 참가자와 참관하러 온 이들까지 약 170~180명이 몰려 빈 자리 하나 없었다. 개찰 시간이 다가오자 자리에 앉지 못해 법정 출입구 바깥까지 빼곡히 늘어설 정도였다. 젊은 부부가 3~4쌍 있었고 혼자 온 20~30대 청년도 눈에 띄었다. 전체 입찰 참여자는 총 101명으로, 경기 파주시 한 아파트(전용 59㎡) 입찰에는 58명이 몰렸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한 아파트(전용 134㎡)에도 17명이 몰렸다. 

주택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며 경매시장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낙찰률(경매건수 대비 낙찰건수 비율)과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 모두 세 달 연속 상승했다. 법원경매 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8월 전국 아파트 낙찰률은 43.0%로 전월 37.5% 대비 5.5%포인트 올랐다. 지난 6월 낙찰률이 32.9%인 것을 감안하면 두달 새 10.1% 상승한 것이다. 같은 기간 낙찰가율은 전월(80.3%)보다 0.3%p, 6월 78.0%보다 2.6%p 오른 80.6%를 기록했다. 

2030세대들도 '내집마련' 기회를 노리며 경매에 뛰어들고 있다. 경매법정 집행관 사무원 A씨는 "요즘은 아주 앳돼 보이는 20대 초반까지도 많이 눈에 띈다. 입찰표 작성법, 절차 등을 꼼꼼히 물어보곤 한다"고 전했다. 

2030세대는 상대적으로 자본금이 적다 보니 서울보다 여러 번 유찰된 경기권 아파트 등 '틈새시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기·인천 물건의 경우 한번 유찰될 때마다 최저매각가가 30%씩 낮아지기 때문에 두 번 유찰되면 가격이 절반 밑으로 떨어진다. 이날 가장 많은 입찰자가 몰린 아파트도 2회 유찰돼 최저매각가가 감정가(6억원)의 절반 이하인 2억9400만원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최근 실거래가(5억원)보다도 2억원 이상 싼 가격이다. 

이날 만난 서모씨(28·남)도 "경매에 관심을 가진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최저가격 대비 실제로 어느 정도에 낙찰되는지 궁금해서 분위기를 살피러 와봤다"며 "활황기보다는 집값이 떨어지기도 했고 금리가 생각보다 많이 안 올라서 합리적인 가격에 내집마련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모씨(34·여)도 "경매공부는 유튜브, 책 등 독학으로 올해부터 시작했는데 실제 법정에 온 건 처음"이라며 "오늘은 비록 낙찰에 실패했지만 앞으로 아파트, 빌라 위주로 좋은 물건이 나오면 꾸준히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58명의 입찰자가 몰린 파주 아파트도 30대 여성이 낙찰을 받았다. 

2030의 경매 참여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8월 서울에서 강제경매·임의경매를 통해 소유권이전등기를 신청한 2030 매수인은 총 88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연령대 매수인 총 249명 가운데 35.3%에 해당한다. 전년 동기 32.5%(203명 중 66명)보다 비중이 높아졌다. 

이주현 지지옥션 수석연구원은 "최근 경매를 통한 주택 매수에 관심을 보이는 2030 청년층이 굉장히 많아졌다"며 "여전히 금리가 높아 집값이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남아있는데, 이를 감안해도 합리적 가격대에 매입할 수 있는 방법이 경매라는 인식"이라고 말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도 "경매 강의를 20년 넘게 해왔는데, 작년 말부터 수강인원의 연령대가 확 낮아졌다. 그 전까지는 대부분 4050세대였다면 요즘 진행 중인 수업 수강생은 전원이 2030세대일 정도"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2~3년 전 주택가격이 폭등할 때 2030세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했던 물건들이 높은 이자와 집값 하락을 못 버티고 최근 경매시장에 나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원 경매 정보 통계에 따르면 서울 기준 올 1~8월 경매 접수 건수는 총 1만350건으로, 지난해 상반기(4777)에 비해 116.6% 증가했다.

​다만 경매시장에 나온 물건들이 대부분 2030 영끌 물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주현 연구원은 "소유자 연령대와 근저당권 설정액, 카드채권 등 요소를 살펴볼 때 2030 영끌족들이 던진 물건이 전체 물건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다.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이후 대출 갈아타기 수요자가 많아 금리인상 타격을 회피한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5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경매 입찰법정 앞에서 참가자들이 입찰게시판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아주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