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어느 한 공무원의 '마지막 선물'

2023-09-04 07:01

김면수 탐사부장






공무원을 상대로 한 악성민원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민원인과 공무원은 분명 갑을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악성 민원과 함께 공무원 위에서 군림하고자 하는 이른바 ‘막무가내식’ 악성 민원인은 해마다 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신문고에 접수된 민원 건수는 1238만1209건에 달하고, 각 부처 및 각 청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민원을 합하면, 공공부문 민원은 최소 2000만 건을 웃돈다.
 
이 가운데 공무원에게 심한 욕설과 협박 등을 일삼는 악성 민원은 2019년 3만8000건에서 2020년 4만6000건, 2021년 5만2000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악성 민원에 따른 유형도 다양하다.
 
서울에 사는 甲씨와 그의 배우자는 최근 사망한 어머니 상속 재산과 관련해 분쟁이 발생하자, 수개월에 걸쳐 대통령실 등 38개 기관에 무려 1만4000여 건에 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또 지난 2021년 10월 중순 울산 중구에 소재한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甲씨는 토지대장 100통과 저소득층을 위한 생업자금신청서, 임플란트 관련 서류 1000장을 발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전북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자해로 얼굴에 멍이 들었는데 학부모는 교사가 아동학대를 했다고 신고한 일이 있었다. 이후 교사는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학부모는 "교사가 학생을 화나게 해서 자해했다"며 재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에 대한 민원이 결코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필요에 의한 민원은 공무원의 힘을 빌려도 되지만, 굳이 이러한 민폐 민원이 당사자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 도통 납득할 수 없다.
 
아닌 줄 알면서도 이 같은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이들에게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가학성(加虐性)이라는 DNA가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학성이란 남을 학대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병적인 것을 말한다.
 
나아가 그 가학성은 선량한 공무원을 대상으로 간접 살인을 유도하기도 한다. 일례로 지난 7월 서울에 소재한 00초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그는) 사망 전 몇 달 동안 학부모 10여명으로부터 각종 민원에 시달리는 등 심리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달 국세청에서도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중부지방국세청 산하 동화성세무서에 근무하고 있던 故 강윤숙 민원실장은 7월 24일 오후 민원실에서 부동산 관련 서류 발급을 위해 방문한 민원인이 고성을 지르며, 항의하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강 실장은) 이후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지난달 16일 숨을 거뒀다. 해당 사건을 접한 국세청 직원들의 공분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급기야 국세청은 고 강윤숙 민원봉사실장 사건의 사실관계와 경위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는 한편 동화성세무서 동료 직원들을 상대로 맞춤형 심리 상담을 지원했다.
 
국세청은 또 민원봉사실 전 직원에게 녹음기를 지급하고, 사각지대 보완을 위한 CCTV 및 민원인과 업무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직원전용 출입문・투명 가림막 등을 추가 설치하는 한편 직원과 신원이 확인된 외부인만 출입 가능한 스크린도어를 모든 관서로 확대키로 했다.
 
이외에도 국세청은 악성민원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직원이 고소・고발을 하는 경우 내부법률지원과 외부법률상담, 변호사비용지원 등을 통해 법적 대응을 성심껏 지원해 나갈 방침이다.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누군가의 안타까운 희생으로 인해 마련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처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인해 더는 악성 민원인 때문에 유명을 달리하거나 속울음 삼키는 국세공무원이 줄어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어쩌면 고 강윤숙 실장이 2만여 국세공무원과 공직 사회에 건넨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