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자 칼럼] 우리는 '영아살해'의 비극을 막을 수 있나
2023-08-25 06:01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얼마 전 모자가정, 부자가정, 조손가정을 위한 한부모가정 법률 지원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난 16일부터 대한여한의사회, 한국미혼모가족협회와 함께 미혼모를 위한 법률·의료 지원을 시작하였다.
지난 7월 감춰졌던 영아 살해 사건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면서 ‘비정하고 무책임한 모성’을 향한 온 국민의 놀라움과 분노가 들끓었다. 2015~2022년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는 2000명을 넘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 중 249명이 숨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800여 명은 아직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뒤이어 연일 영아를 살해한 혐의로 끝도 없이 신생아의 친모들이 구속되었다. 기존에 최대 10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다소 가벼운 죄가 아닌 최대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자식을 죽인 모성이라는 점에 정당화하긴 어려웠지만 연이은 여성들의 구속을 지켜보면서 마치 또 다른 중세시대로 돌아간 듯한 참담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미혼모의 현실은 어떤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여기저기 도망다니는 친부, 미혼모를 향한 부모의 비난과 부정적인 사회의 시선, 그리고 현실적으로 아이와 함께 나갈 수 없는 직장, 그리고 부정기적인 급여 등으로 맘껏 아이와 놀 수도 웃을 수 없는 환경들이 여성들을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제시된 대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실제 김성희 경찰대 교수가 작성한 2013년 1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8년간 영아 살해죄로 기소된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범행 동기는 임신·출산 사실이 주변에 알려질 것이 두려워 은폐 목적으로 살인을 하였다는 것이 제일 많았고 다음으로 생활고로 양육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이 중 아이의 친부가 친모의 임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사례가 대다수였고 이는 친모 혼자서 양육의 부담을 져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 장소는 병원에서 출산한 사례는 전무했고 주거지나 건물 화장실, 사무실 등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병원 밖 출산 후 이뤄진 영아 살인은 애초 통계로는 잡히지도 않았다.
김윤신 조선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서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영아를 유기한 배경에는 ‘부모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워서’라고 했다. 힘들 때 가장 가깝고 의지가 되어야 할 대상인 부모에게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왜 자식을 비난할까. 결국 근본은 미혼모를 비롯한 한부모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성숙하지 않은 것이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인식은 왜 미혼모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볼까. 권희경 저자가 쓴 <미혼모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면 단서가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전까지는 ‘미혼모’라는 용어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전까지 미혼모는 자식을 낳으면 아버지 호적에 입적시키고 재혼을 하거나 자식을 키우더라도 드러내지 못하고 양육하였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해외 입양이 활발해지자 적극적으로 미혼모들을 설득하여 입양하도록 하는 시기에 ‘미혼모’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결국 아이를 임신하고 낳았지만 양육할 수 있는 모성을 부정하는 개념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조사 대상 20대 여성 중 80%가 ‘비혼 출산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간 미혼 부모 통계에 의하면 미혼모 숫자는 대략 2만명 내외, 미혼부 숫자는 1만여 명에서 7,0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2021년 통계를 보면 20대 미만인 미혼모 숫자는 줄어들었고 30대와 40대는 약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대 미만은 임신이 줄었다기보다 낙태가 늘어난 게 아닐까 싶다. 또 우리나라 30·40대 여성은 낙태 쪽보다 출산해서 양육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제는 성숙한 나이대에서 양육을 선택하는 비율도 늘어나고 있고 드물게 10대에서도 부모가 딸이 그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선택하게 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이제 우리도 미혼모의 모성을 인정하고 미혼모 가정을 비롯한 한부모가정에 대해 응원과 적극적 지원으로 인식을 바꾸는 교육도 필요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인식 변환뿐만 아니라 미혼모에게서 아이를 떼어 놓는 정책을 내놓기에 앞서 미혼모가 아이를 떳떳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분들은 자신들이 아이를 키우고 함께하고 싶어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그렇게 말할 때 왜 코가 찡해오는지 모르겠다.
국가도 저출산 대책 중 하나로 미혼모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한부모지원법이 2018년 개정되면서 미혼모 지원 규정을 별도로 두어 2019년부터는 미혼모와 자녀를 위해 건강관리와 의료비 지원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지원 대상을 살펴보면 가구소득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2조 제11호의 기준 중위소득에 여성가족부 장관이 정한 비율을 곱한 금액 이하인 소득에 해당하는 한부모가족에 제한되어 있다. 기준 중위소득이라고 함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급여의 기준 등에 활용하기 위하여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심의 의결을 거쳐 고시하는 국민가구 소득의 중위값으로 2021년 기준 1인 가구 182만7831원이다. 여기에 여성가족부 장관이 정하는 비율, 예를 들면 60%이하라고 한다면 이를 곱한 금액에 해당하고 대략 계산해보면 1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다른 지원금과 지자체 자체 지원금도 있긴 하다.
실제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분들을 면담해보니 이러한 지원금은 미혼모 처지가 각자 달라 어떤 분들에게는 상관없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고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정상적인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에 급여가 통상적으로 1인이 벌 수 있는 금액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혼모 또는 한부모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기준 중위소득’에 집착해서 경제적 형편이 아주 어려운 이에게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혼모들은 임신 초기에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고 경제적 능력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게 된다. 위기임신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 미혼모에게 더욱더 섬세한 국가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국가가 하지 못하는 영역에는 민간의 지원도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대한여한의사회와 함께 미혼모 가정 그리고 한부모가정이 겪고 있는 고민들을 법률적·의료적 차원에서 미약하나마 지원하기로 나선 것이다. 가끔 우리나라 국민은 정말 힘들 때 서로 발 벗고 돕는 DNA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런 국민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국가가 존재 이유를 확실히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김학자 필자 주요 이력
△한국여성변호사 회장 △대한변협 부협회장 △전 대한변협 인권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