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자 칼럼] 공익소송 막는 '패소자 부담주의' ..제도개선 위해 연내 입법을

2023-06-13 20:22

[김학자 변호사]




소위 '신안염전 노예사건'의 피해자들은 지자체 공무원들이 노동착취를 방기했다는 책임을 묻기 위해 2015년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일이 있었다. 그후 지자체에 690만원의 소송비용을 내야 했다. 지난 2022년 12월 휠체어를 태울 수 있도록 도입된 저상버스가 장애인 탑승을 거부하는 일이 빈번하여 이 문제를 제기한 장애인이 버스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승소했으나 관리감독 책임있는 지자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가 패소한 일이 있었다. 그후 지자체로부터 소송비용 826만원을 내라고 통지서를 받았다. 그뿐 아니다. 재심변호사로 명성을 얻고 있는 박모 변호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인지대와 송달료까지 변호사가 부담하면서 소송을 진행했지만 1심, 2심 패소했고 이를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러나 패소할 때 고스란히 상대방 변호사비용까지 자신이 떠안게 될 것을 걱정하였다가 피해자 측을 보고 곧바로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실제 적지 않은 변호사들이 자신의 보수를 뒤로 한 채 피해자를 위해 공익소송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그때 드는 걱정은 첫째가 인지대이고, 더 큰 걱정은 패소할 때 안게 되는 상대방 변호사 비용이다. 그래서 주저주저하면서 뒤로 물러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얼마 전에는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진행한 단체소송에서도 패소한 소비자단체에게 여지 없이 1500만여원 상당의 패소비용을 내라는 청구서가 날아왔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소비자단체가 소송비용을 감당할 만큼 재력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어디선가 빌려와서 운영비를 충당하곤 한다. 그래서 대규모 피해가 있는 환경소송, 자동차 연비 속임 및 휴대폰 제조회사의 개인정보 불법수집 등과 같이 대기업을 상대로 한 다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사례에 있어서 1, 2심과 대법원까지 진행을 생각할 때 소송비용만 2000만원을 훌쩍 넘게 되므로 쉽사리 소송을 결정하지 못하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비자기본법 제70조에 의한 소비자 단체소송은 본안심리를 받기 위해서 소송요건과 소송의 공익성에 관하여 법원의 사전심리를 거쳐서 소송허가결정을 먼저 받아야 하고, 금전적 청구도 불허되고 오로지 행위금지 내지 중지청구만이 가능하다. 결국 승소를 하더라도 그 소송을 진행한 소비자단체에는 아무런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소비자기본법에 따른 소비자단체소송은 사적 소송과 구별되는 공익 소송임이 명백하다.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제98조는 패소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있다. 소위 '패소자부담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 민사소송법은 소송비용을 패소한 당사자부담으로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소송비용에 변호사보수를 포함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 1월 민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변호사보수를 소송비용에 포함시키고 원칙적으로 패소자가 이를 부담하도록 개정했다.
 
우리나라 법원 등 개정을 반대하는 이들의 입장은 '공익소송이 무엇인지 개념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개정한다면 남소 우려 등 부작용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 혹은 '승소가능성이 높지 않아도 사회적 환기 목적으로 소를 제기하는 경우 사법부가 정치화할 우려가 있고 사법자원의 효율적 활용에 부정적 영향이 미친다' 등의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4월 18일 공포된 개정 민사소송법 등에 따르면 ① 최소한의 인지액을 납부하지 아니하고 소장을 제출할 경우 소장 접수를 보류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됐고 ② 패소할 것이 분명한 사건에 대해서는 소송구조 신청에 필요한 소송비용과 그 불복 신청에 필요한 소송비용에 대해 소송구조를 하지 않을 수 있으며 ③ 소권 남용 사건에 해당해 법원이 변론 없이 소 또는 항소를 각하하는 판결을 할 수 있는 경우 피고에 대해 직권으로 공시송달을 명할 수 있게 됐고 ④ 소권을 남용해 소 또는 항소를 제기한 사람에게 500만원의 과태료까지 물도록 하였다. 그렇다면 법원 등 패소자 부담 등 민사소송 개정을 반대하는 측에서 제기하는 우려는 이번 민사소송의 개정으로 많이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은 공익소송의 경우 원고가 승소하면 패소한 측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역인 경우 상대방 소송비를 부담하지 않는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영국은 공익소송의 경우 원고가 패소해도 법원이 재량껏 소송비용을 면제해주거나 소송비용의 상한선을 설정하고 있다.
 
공익소송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여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순기능을 갖고 있고 이것은 국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나 오히려 국가의 공권력이 남용될 때에도 이를 시정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익소송'의 개념이 모호하다고 한다면 법원이 소송허가를 엄격히 하고 있는 '소비자기본법에 나와 있는 소비자단체소송'에 한해서라도 패소자 부담을 완화하거나 면제하는 정도의 입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이와 관련하여 '공익소송 패소자부담주의'는 국민의 재판청구권, 평등권 등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위헌이라고 하여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있고 양정숙 의원이 개정 민사소송법 안을 발의해놓은 상태이다.
 
그러나 정쟁에 휘말린 정치는 내년에 총선만을 향해 달려갈 뿐 정작 국민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올여름이 지나고 나면 대부분의 입법안들이 폐기되는 수순을 밟지나 않을까 걱정이 먼저 앞선다. ‘정당’과 ‘국회의원’은 ‘공천과 당선’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올바른 소비자운동의 활성화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익소송을 수행하는 수많은 이들을 위해 공익소송의 패소자부담주의를 완화하는 입법안이 올해 안에 꼭 통과되길 기대한다.



김학자 필자 주요 이력 

△한국여성변호사 회장 △ 대한변협 부협회장 △전 대한변협 인권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