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책무구조도 도입] 국내 안착 키 잡은 신한…진옥동의 '절치부심'

2023-08-20 18:00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지난달 7일 서울 중구 신한라이프 본사에서 진행된 ‘신한컬쳐위크’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신한금융그룹]

신한은행이 책무구조도 제도 도입을 위해 '총대'를 메고 나서게 된 배경에는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라임펀드 불완전 판매’ 등 교훈을 통해 주요 경영진이 절치부심한 결과라는 후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이 한국형 책무구조도 도입을 위해 금융당국과 협력에 나선 것은 당국과 신한금융 양측 시각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높다. 진 회장이 취임 이후 내부통제 강화를 거듭 강조하던 신한금융은 금융당국이 책무구조도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자 의욕적으로 전면에 나섰다.

실제 진 회장은 지난달 신한라이프에서 열린 강연에서 "책무구조도를 법령 통과 뒤 조기에 도입하겠다"고 직접 발언해 금융권 이목을 집중시켰다. 신한금융은 앞서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에서 사모펀드 신규 판매 3개월 정지, 과태료 57억원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후 신한금융은 올해 초 취임한 진 회장을 필두로 내부통제 강화 방안에 나섰고 해외 사례에서 책무구조도를 화두로 올려 제도 마련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논의 초반에는 신한금융 내부에서조차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라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이 엄격해져 영업력이 저하될 우려도 제기됐다. 그러나 신한금융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해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을 들어 책무구조도 도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신한금융의 이러한 시도는 금융당국이 한국형 책무구조도 도입을 발표하면서 한층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책무구조도 도입 준비에 나섰을 때 신한금융 측에서 ‘우리가 먼저 해보겠다’고 제안했다”며 “책무구조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영국식이 아닌 (국내 금융 상황에 맞는)다른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 이러한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신한금융은 이후 정상혁 신한은행장을 구심점으로 책무구조도 초안을 만들고 임원들끼리 모여 토론·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보완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 작성에 관여하지 않고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수준에서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금융기관인 신한은행이 직접 주도권을 쥐고 제도를 설계하도록 독려하고 있는 셈이다. 

여타 금융회사들도 내부적으로 책무구조도에 대한 내용 파악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로는 신한은행이 가장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는 다수 금융회사가 책무구조도 도입에 있어 시행착오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제도를 국내에 들여오는 데다 아직 입법 절차도 완료되지 않아 세부적인 방향 설정에 따른 리스크 부담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신한은행이 직접 금융당국과 소통하면서 마련한 '책무구조도 안'을 공개하면 다른 금융회사들도 이를 바탕으로 각자 영업 환경에 맞춰 수정해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권에서는 신한은행이 다듬고 있는 한국형 책무구조도가 큰 틀에서는 금융위가 앞서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토대로 세부 내용을 어떻게 설계하는지가 관건이라는 시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 중에서도 내부통제나 리스크를 파악하는 체계가 가장 잘 잡혀 있는 은행권에 책무구조도가 먼저 자리 잡고 이후 타 업권도 이를 참고해 도입할 여지가 크다”며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입법되면 신한금융을 필두로 신속한 도입과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