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허브' 꿈꾸는 인니, 테슬라 공장 말레이에 뺏기나

2023-08-16 10:03
인니, 장관까지 나서서 머스크에 구애 총력전
니켈 등 자원 제외 말레이가 투자환경 앞선다는 판단

테슬라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전기차 제조 강국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인도네시아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테슬라 전기차 생산기지(기가 팩토리) 유치가 불투명해지면서 인도네시아 정부의 꿈이 위태로워졌다. 올해 초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지난 2월만 하더라도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테슬라 기가 팩토리 유치를 자신했다. 하지만 기다리던 테슬라의 발표가 나오지 않고 상황이 불투명해지면서 더 이상 확신에 찬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테슬라가 동남아시아 기가 팩토리 발표를 미루는 사이 말레이시아가 유력 후보지로 급부상했다. 테슬라는 인도네시아가 아닌 말레이시아에 지역 사무소와 서비스 센터 설립을 깜짝 발표했다. 테슬라의 공식 발표를 기다리던 인도네시아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기가 팩토리 유치를 기대하던 인도네시아는 위기감에 빠졌다. 정부 고위당국자까지 기가 팩토리 유치를 위해 미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전 세계(중국 제외) 전기차 판매 1위 기업 테슬라를 잃으면 전기차 허브는 사실상 물거품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테슬라에 세제 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했다. 하지만 우려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테크와이어, 아시아타임스 등 외신들은 테슬라 기가 팩토리 유치에 있어 말레이시아가 인도네시아보다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테슬라 요구 거절하던 인니 정부, 말레이 움직임에 감세까지 거론
테슬라의 기가 팩토리 발표가 부진하자 인도네시아 정부 당국자는 감세 카드까지 꺼내 설득하고 나섰다. 로이터 통신은 "인도네시아가 주변국들과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0일 아구스 구미왕 산업부 장관은 인도네시아 국제모터쇼(GIIAS)에서 전기차 제조업체의 수입 관세를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50%까지 부과하는 수입 관세를 인도네시아 현지에 투자하는 전기차 제조업체에 한해서 철폐하겠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이 같은 수입 관세 폐지는 테슬라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인도네시아 정부에 니켈 채굴, 관세 인하, 지방 정부의 규제 해제 등을 요구해 왔다. 그동안 조코위 대통령은 니켈 채굴을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관세 규제 등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았다. 중국 상하이 등 해외 생산이 많은 테슬라 입장에서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테슬라가 말레이시아 투자 발표를 단행하면서 인도네시아 내 기류가 바뀌었다. 테슬라만 유독 과도한 요구를 한다는 종전의 입장에서 선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절박한 쪽은 인도네시아 정부다. 전기차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국책 사업이다. 조코위 대통령은 니켈과 코발트 등 자원을 바탕으로 인도네시아를 동남아시아 '전기차 허브'로 만드는 꿈을 가지고 있다. 2030년까지 전기차 60만대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근 인도네시아 당국자와 머스크 CEO의 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것이 결정적 감세 배경으로 작용했다. 지난 3일 루훗 판자이탄 해양투자조정부 장관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머스크 CEO와 2시간 30분의 회담을 가졌다. 외신은 회담이 당초 예상보다 2배가량 길어진 부분에 주목했다. 아시아타임스는 "테슬라의 말레이시아 투자에 인도네시아가 당황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회담에서 양측은 입장 차이가 팽팽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타임스는 관계자를 인용해 머스크 CEO가 인도네시아 정부의 태도에 따라 상황이 흘러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회담 관계자는 "문제는 우리의 제안에 있었다. 그(머스크 CEO)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아시아타임스에 전했다. 
 
"인니, 니켈 제외하고 매력 적어"…노동력·구매력 등 말레이가 앞선다는 평가
인도네시아가 그동안 테슬라 기가 팩토리 유치에 자신을 보인 것은 세계 1위의 니켈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전기차 제작에 필수적인 원료인 니켈을 인도네시아 혼자 전 세계의 절반가량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켈과 많은 인구 정도를 제외하고는 인도네시아의 투자 매력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조코위 대통령은 그동안 인도네시아의 장점으로 풍부한 니켈을 거론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과거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니켈 생산량 1위 국가이고 인구 4위의 거대한 시장을 갖고 있어 기가 팩토리를 유치하려는 다른 나라들보다 우위에 있다"며 "전기차 생산 전에 차량용 배터리 공장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니켈의 인도네시아 국외 반출을 금지하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까지 보였다. 조코위 대통령은 지난 2020년 니켈 수요가 증가하자 인도네시아 니켈 수출을 금지시켰다. 니켈 매장량 1위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니켈이 필요하면 외국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직접 들어와서 경제에 기여하라는 의미다. 결국 니켈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높게 본 중국, 벨기에 등 국가의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문제는 기가 팩토리 유치를 위한 인도네시아의 비교 우위가 니켈 매장량에만 국한된다는 점이다. 니켈과 인구를 제외한 대부분 투자 여건에서 말레이시아가 인도네시아보다 매력적이다. 전기차에 필수적인 충전소 설치 상태와 투자 환경에서 등 말레이시아가 낫다는 이야기다. 

노동력부터 차이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대부분 학력 인구가 중졸에 미치지 못한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영어가 능통한 인구도 많다. 인구는 인도네시아가 말레이시아보다 8배나 많지만, 말레이시아 노동시장이 더 매력적인 이유다. 아시아타임스는 "말레이시아의 노동력이 훨씬 더 잘 훈련됐고 기술에 정통하다"고 짚었다. 

충전소 문제도 인도네시아 투자에 불리한 환경이다. 전기차의 최대 과제 중 하나는 충전소를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달려 있다. 인도네시아는 충전소가 450개에 불과하며 대부분 자바섬에만 국한돼 있다. 향후 2년 동안 인도네시아 정부의 목표대로 40만대 이상의 전기차를 운영하려면 최소 2만대의 충전소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를 위한 투자 움직임은 아직 본격화하지 않고 있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전기차 생태계가 인도네시아보다 잘 구축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까지 만든 충전소도 1000개로 인도네시아보다 앞선다. 여기에 테슬라와 협력해 2025년까지 1만개의 충전소를 추가할 예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도네시아 내부에서도 기가 팩토리 유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도네시아의 한 애널리스트는 "내가 머스크라면 말레이시아에 먼저 투자할 것"이라며 "말레이시아의 1인당 소득이 더 높다는 것은 전기차 판매가 더 많고 도로 인프라가 더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네시아의 전기차 시장은 오토바이가 중심이다"라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광물도 그다지 큰 매력 요인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앤드리 사트리오 누그루호 자카르타 경제금융개발연구소 연구원은 "테슬라는 더 이상 니켈 기반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테슬라가 인도네시아에 전기차 배터리 시설을 세우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니켈이 포함되지 않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사용하는 테슬라에 인도네시아는 큰 매력이 없다는 취지다. 

머스크 CEO는 인도네시아 정부 관계자에 기가 팩토리 유치와 관련 올해 말까지 확답을 줄 것을 시사했다. 시장에서는 인도네시아보다 말레이시아가 기가 팩토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가운데 향후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