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빈익빈 부익부] 부동산 돈맥경화, 중소건설사부터 덮쳤다

2023-08-16 08:20
연간기획 [극의 시대]
상반기 폐업 종합건설사 218개사, 전년 대비 96% 많아

[그래픽=아주경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청약 시장 반등에도 건설현장은 고금리와 미분양 물량 적체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LH 철근누락 사태와 GS건설 부실공사, 새마을금고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불안감 등 건설업계를 둘러싼 대내외 분위기가 악화되면서 자금 및 리스크 관리 여력이 취약한 중소건설사는 고사 직전의 위기를 겪고 있다.

중소건설사와 시행업계는 올 하반기 금리인상과 건설사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또 한번 가시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적감소와 자금난이 최근 1~2년간 이어지면서 더 이상 버틸 체력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방 중소건설사 한계기업(영업이익이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 비중은 2021년 12.3%에서 지난해 16.7%로 증가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 중견·중소 건설사에 더 아팠다...상반기 폐업 종합건설사 218곳, 전년비 2배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건설업계의 ‘돈맥경화(자금경색)'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소건설사를 중심으로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중소건설사는 대형건설사에 비해 원가협상력, 자금력, 브랜드파워, 해외건설 수주 등에서 경쟁력이 낮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위기에 더 취약하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7월 말 기준)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218건으로 지난해 전체 폐업건수(261건)의 85%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111건)과 비교하면 96.4% 증가한 수치다. 종합건설사의 폐업은 전문건설업체의 연쇄 폐업 요인으로 작용한다. 올 상반기 폐업한 전문건설업체는 115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47건)보다 22.4%가량 늘었다.
 
이미 올 상반기에 5곳 안팎의 중견·중소 건설사들이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아파트 브랜드 '썬앤빌'로 알려진 건설업체 HN Inc(에이치엔아이엔씨)는 지난 3월 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이 회사는 범현대가(家) 3세 정대선 씨가 최대주주로, 자금난 경색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IT 부문을 물적분할해 매각했지만 부동산 PF사업 부실화로 유동성 위기에 처하며 채무상환에 어려움을 겪었다.

아파트 브랜드 '줌(ZOOM)'으로 알려진 중견건설사 대창기업, '해피트리'로 유명한 신일건설도 올 상반기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두 건설사 모두 한때 시공능력평가 100위권에 머무를 정도로 탄탄했지만 고금리의 파고와 미분양 증가로 인한 자금난을 견뎌내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우석건설, 동원건설산업, 대우조선해양건설 등이 부도를 맞았다. 우석건설은 충남 지역 6위 규모의 건설사로 탄탄한 내실을 다져왔지만 결국 납부기한 내 어음을 결제하지 못했다. 경남에서 기반을 다져온 동원건설산업, 주상복합 브랜드 '엘크루'를 보유한 대우조선해양건설 등도 계속된 자금난으로 최종 부도 처리됐다.
 
시행업계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높은 금융비용과 함께 원자재값 상승, 미분양 리스크 확대 등으로 사업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금융비용만 겨우 내면서 버티고 있는 사업장이 부지기수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시행사 고위 관계자는 "브릿지론 대출금리가 연 13~14% 이상으로 뛰면서 금융비용이 연간 100억원씩 늘어나고 있다"면서 "시장이 침체돼 책임시공과 신용공여를 해 줄 시공사를 찾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시행사 관계자도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아파트는 물론 오피스텔, 물류, 지식산업센터 등 모든 시장이 얼어붙었고, 금융사들은 부동산 PF 집행을 못하고 있다"면서 "20년간 업계에 있었지만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자만 내면서 거의 1년을 억지로 버텼는데 여기서 상황이 더 악화되면 사업을 엎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올해 건설산업은 세계 경제 악화, 주택건설 시장의 자금난, 건설자재값 및 인건비 상승, 미분양 물량 적체, 건설수주 악화 등으로 지속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기술형 입찰 중심의 대형공사가 주를 이루고 있어, 업계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 건설사들이 겪고 있는 경영상 어려움은 체감경기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방 미분양, 전체 미분양의 90% 육박...중소 건설사 부실 '뇌관'

중소 건설업계가 유독 어려운 이유는 부동산 시장 침체와 관련이 깊다. 집값 하락과 고금리에 따른 분양경기 악화, 청약시장 서울 쏠림 현상 등으로 늘어나는 지방 미분양은 중소 건설사에 부실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 말 기준 미분양 주택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미분양 주택은 6만6388가구로, 이 가운데 수도권 미분양 물량은 1만559가구지만 지방 미분양은 5만5829가구에 달한다. 지방 미분양 물량이 전체의 85%에 육박한다.
 
지역별로는 대구 미분양 물량이 1만1409가구로 가장 많았고, 이어 경북 8276가구, 충남 7023가구, 경남 4076가구, 전북 4004가구, 충북 3950가구, 전남 3560가구, 울산 3551가구, 부산 3107가구, 강원 2461가구 제주 1954가구, 광주 643가구, 세종 86가구 등을 기록했다.

수도권에서는 경기 7226가구, 인천 2152가구, 서울 1181가구 순이다. ‘악성 미분양’으로 평가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6월 기준 9399가구로, 전월(8892가구) 대비 5.7% 증가했다.
 
지방 분양시장 참패, 미분양 물량 증가에 대한 부담으로 건축허가, 착공, 준공 등도 모두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올 상반기 건설산업 현황에 따르면 건축 인허가 면적은 7202만9000㎡로, 전년 동기 대비 22.6% 줄었고, 같은 기간 착공면적은 3592만㎡로 38.5% 감소했다. 주택인허가 실적은 18만9213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27.2%, 분양 승인 실적은 6만6447가구로 같은 기간 43% 줄었다.

당장은 미분양 물량이 부담이라고 해도 급격한 주택 착공실적 감소는 공급가뭄으로 이어져 향후 ‘집값 불쏘시개’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은 2025년 입주 물량이 19만353가구로 2024년 대비 46% 줄어든 뒤, 2026년 4만3594가구, 2027년 4770가구로 공급 가뭄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부 서울 대형 건설사의 얘기고 대부분의 중소형 건설사는 여유 자금이 없어 당장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남아있질 않다"면서 "억지로 수주를 해도 공사비가 너무 많이 올라 분양가를 시장 상황에 맞추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공급 감소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소건설사, 자금조달·신용등급 악화..."하반기 추가 금리인상, 유동성 대비해야" 

올 하반기에도 자금조달 상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건설경기는 당분간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건설사 수익성, 유동성 악화로 주식을 통한 자금조달, 신용등급 개선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말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롯데건설, 태영건설, 한신공영 등 일부 건설사에 대한 신용등급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건설업 대출 규모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국은행 건설업 대출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6년 4분기 37조7000억원이던 건설업 대출규모는 지난해 4분기 67조8000억원 규모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금리 인상과 더불어 부동산 PF 부실화 우려로 건설업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면서 건설사들이 대출을 통한 자금조달에 집중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지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건설업 자금조달 여건은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과 2022년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채권시장 신용경색, 향후 추가적인 금리인상, 부동산 PF 부실화 우려 등으로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건설 및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 있는 현시점에서는 건설기업의 유동성 관리가 기업의 파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효율적인 자금조달을 포함한 경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