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수업방해 세부 명시한 美·英..."한국은 교사 혼자서 감당"

2023-08-08 18:22
교육부, 학생생활지도에 대한 고시안 내주 초안 마련

8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 주관으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 마련을 위한 포럼이 열리고 있다. [사진=신진영 기자]

서울 서초구 서이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신규 교사 사건으로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 "정당하게 교육할 권리를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육부가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안을 마련한다고 밝힌 가운데, 훈육이나 정당한 교육 등을 범위와 대상을 더욱더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 신태섭 부소장(교수)은 8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 마련을 위한 포럼에서 "모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게 핵심"이라며 "해외 사례를 분석하면서 놀랐던 부분은 구체적인 훈육과 생활지도 방법이 명시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생활지도 방안 구체적 명시해야"

신 교수는 발제를 통해 영국과 미국, 핀란드 등에 있는 학생생활지도 관련 법령을 소개했다. 영국의 '교육 및 감사에 관한 법률' 제7장 90조엔 "훈육은 학생에게 교육이 제공되는 학교에서 학생의 행동이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 학생에게 부과하는 지도를 의미한다"고 돼 있다. 훈육을 시행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조항도 명시돼 있다. 

미국 '연방 교사보호법'은 교장과 교사·기타 학교 전문가에게 질서와 규율 등을 유지하기 위한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는 데 필요한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 신 교수는 이 법률이 "정당한 학생생활지도를 했을 때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생겨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선 교사들이 요구하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면책권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주장과도 통한다. 앞서 여야 의원들도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 고의나 과실이 없는 경우나, 학칙에 따른 학생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포럼에 참석한 교사들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제자로 나선 이보미 대구교사노동조합 위원장(대구 감천초 교사)은 "어려운 상담은 교사에게 오롯이 전가돼 상담에 대한 교사의 개인적 부담감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수업방해 행위에 대한 경고 후 일정 횟수가 지나도 개선되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분리하는 전략'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두 주의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교실 내 즉시분리', 구두 주의와 경고가 누적 3회 이상인 데도 개선이 안 되면 '학교 내 별도 공간 분리', 이 모든 주의에도 행동이 개선되지 않으면 '학부모 소환 및 학생 귀가 조치'를 명령하는 방식이다.

마지막 발제자인 손덕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부회장(울산 외솔중 교사)은 "수업 준비, 교칙 준수, 다른 학생 학습권 침해 금지, 흉기·약물 소지 금지 등을 규정한 뉴욕시교육청 학생권리규정과 달리 현행 학생인권조례는 관련 내용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생 본분과 사명을 망각하는 조례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손 부회장은 또 현행 학생인권조례에 "학생이 임신·출산할 권리, 성관계를 할 수 있는 권리, 학생들이 일진회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 선생님을 고발할 수 있는 권리, 학교에서 복장·두발·용모의 권리, 수업시간에도 잠잘 수 있는 권리가 명시돼 있다"고 주장하며 교사들의 강한 비난을 받았다. 
 
"첨예한 쟁점, 이달 내 정리하겠다는 건 무리수"
 
8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열린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 마련을 위한 포럼' 현장에서 한 교사가 발제자로 나선 손덕제 한국교총 부회장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사진=신진영 기자]

손 부회장의 발표가 끝나자 한 교사는 "저는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지역 교사"라며 "교사들을 바보로 아느냐,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어쩌라는 것이냐"고 외쳤다. 또 다른 교사는 "교육부가 이러려고 이 자리를 만든 것이냐"며 의견을 보탰고, 일부 참석 교사는 "발제자들을 어떤 기준으로 뽑은 것이냐"며 항의를 하기도 했다. 

교육부가 이번 사안을 급하게 마무리 지으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 B씨는 "첨예하고 관련된 집단이 많고 쟁점이 많은 사항을 한 번에 정리하겠다는 건 갈등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달에 학생생활지도 고시를 만들고 2학기에 실시하겠다는 건 교육부의 '다급한 위기의식'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꼬집었다.

앞서 교육부는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초안을 다음주 중에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포럼에 참석한 고영종 교육부 책임교육지원관은 관련 비판에 "학생생활지도 고시안 마련은 공교육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실제 고시안이 제정될 때까지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