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흉기난동] 전문가들 "론 울프 테러리스트 등장, 처벌 높이고 서열주의 개선해야"

2023-08-06 11:34
잇단 흉기난동 국민 불안 최고조..전문가 4인 긴급진단
증오범죄, 외국선 '차별'에 기인...우리나라 '서열·비교 문화'
"사회 전반에 공포심 조장 '테러'...높은 처벌수위, 예방효과"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 국제대테러연구센터 자문위원,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왼쪽부터). [사진=연합뉴스·본인 제공]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등 최근 흉악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차별 흉기 난동은 '테러'의 일종이라고 입을 모았다. 개인에게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끼치는 수준을 넘어 사회 전반에 공포심을 조장하는 행위라는 이유에서다. 정부‧수사당국이 흉기 난동 피의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을 예고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처벌 수위를 높이는 한편 우리나라 특유의 서열주의와 비교하는 문화를 반드시 개선해야 할 때라고 경고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연이은 묻지마 흉기 난동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추진을 공식화했다. 대검찰청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를 '테러' 수준으로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건의한다.
 
아주경제는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 국제대테러연구센터 자문위원과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을 통해 이번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짚어보고 강도 높은 처벌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등을 따져봤다.
 
비교하는 문화·지나친 서열주의···"사회에 대한 분노"
전문가들은 청년층 사이에 서열주의에 입각한 경쟁이 심화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인해 과시하는 문화가 반영된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라고 진단했다. 신림동 흉기 난동 피의자 조선(33)은 경찰 조사에서 "나는 불행한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서현역 흉기 난동 피의자 최모씨(22)는 대인기피증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기도 했다.

곽금주 교수는 "다른 청년들과 비교했을 때 자기 상황이나 처지를 비관하며 박탈감을 크게 느끼고 스스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루저(loser‧패배자)'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대학 간 친구들, 취업한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은 실패했다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비교하는 문화와 지나친 서열주의가 깔려 있는 우리 사회를 보니 분노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에 대한 분노가 해소되지 않고 외부로 표출되는 '묻지마 범죄'가 외국에서는 종종 인종차별이나 종교차별에서 기인한다. 이윤호 교수는 "사회와 자신이 가진 현재 상황에 대한 분노를 '남탓'으로 돌리면 '증오범죄'가 되는 것"이라며 "미국에서는 종교적‧정치적‧인종적 편견에 의한 증오범죄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사회 전반에 대한 증오가 범죄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범죄 방식은 SNS 등을 통해 빠른 속도로 확산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범행 방법을 몰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 행위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모방범죄'가 속출할 우려가 있다. 허민숙 조사관은 "모방범죄 가능성도 굉장히 많다"며 "범죄 영상이 무분별하게 확산하면서 범죄 행위를 따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론 울프 테러리스트 등장···"국가 차원에서 대처해야"
지난 4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 인도에 전날 밤 벌어진 차량 돌진 사고로 인한 혈흔 자국이 남아 있다. 지난 3일 저녁 경기 분당에서 남성 최모씨(22)가 경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를 들이받은 후 서현역과 연결된 백화점에서 흉기 난동을 부려 14명이 다쳤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검찰은 무차별 흉기 난동을 '테러'로 규정하고 법정 최고형을 받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테러는 불특정 다수에게 폭력적 수단을 사용해 공포를 조장하는 행위다. 과거에는 상부 지시가 있는 '조직적 테러'만 떠올렸다면 최근에는 '론 울프(lone wolf·외로운 늑대)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도 등장하는 등 '개인의 테러'도 포함된다.

이윤호 교수는 "요즘은 전통적인 테러 형태가 아니라 '뉴 테러리즘'이라고 개인이 테러를 하는 론 울프 테러리스트도 등장했다"며 "개인적 일탈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 안보 문제로까지 확대되니 엄중하게 대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흉기 난동을 테러로 보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국민 일상에 공포심을 조장하는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인범 자문위원은 "통상 테러라고 하면 국가 대 국가 간 싸움으로 보는데 영국 등에서는 묻지마 범죄에 대해서도 테러로 구분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강도 높은 처벌이 예방 효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가 가해자 처벌에 대해 사실은 관대하게 접근해왔다"며 "무고한 시민에게 무차별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특유의 서열주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문화를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인종차별로 총기 난사를 벌이는 미국 사례처럼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고질병을 고쳐야 할 때라는 것이다.

곽금주 교수는 "사회 전반에 자신의 분노를 터트리는 사건들이 터지는 게 이제 막 시작하고 있는 단계"라고 경고했다. 이어 "최고의 대학, 최고의 직장만 가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플렉스(flex‧부를 과시)'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는 등 어떤 청년들은 부를 과시하거나 부동산과 주식, 비트코인으로 부풀리고 있는데 자신은 도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라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는 것,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고 사는 것을 인정해주는 성숙한 사회로 반드시 바뀌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