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상환유예 종료 앞두고 '설상가상'..."알고도 폭탄 돌려"

2023-07-24 16:17

[사진=아주경제 그래픽팀]

대출 문턱이 가장 높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부실채권 매각·상각 규모가 급증하면서 금융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가 오는 9월부터 차례로 종료되면서 연쇄적인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종료를 앞두고 부실채권이 급증하고 있었지만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해부터 기준금리가 급격하게 오른 데다 만기 연장·상환 유예 종료가 이미 예정돼 있어 두 변수 모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금융권은 여신 건전성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분류한다. 이 중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을 ‘고정’ 단계 이하 여신으로 분류한다. 고정이하여신(NPL) 중에서도 회수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되면 상각·매각 절차를 통해 장부에서 털어내는 것이다.

여신을 장부에서 상각해 없애는 과정에서 그 손실은 해당 여신에 대해 미리 잡아뒀던 대손충당금과 상쇄된다. 담보를 보유한 대출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매각하기도 한다.

부실채권 매각·상각은 이처럼 금융기관이 채권 회수를 포기하는 셈인데, 올해 상반기 5대 은행에서만 전년 동기 대비 123.4%나 많은 2조2130억원에 달하는 부실채권 회수를 포기했다. 금융권에서는 규모 급증이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는 시점을 앞두고 부실채권 매각·상각 규모가 급증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 연체율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을 때부터 부실채권 상각·매각도 서둘러서 점진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했는데 올해 들어 집중되고 있다”며 “특히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는 종료 시점을 최대한 미루면서 폭탄을 돌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은행권에서는 수치상으로 NPL 비율 등 건전성이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느슨하게 대응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라며 “최근 금융당국이 안정성 관리를 강화하고는 있는데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를 적용받은 여신 규모는 85조원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수년 동안 만기를 연장하고 상환을 유예하면서 금융기관이 해당 여신에 대한 부실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금융당국도 만기 연장 조치를 2025년 9월까지로 하고 상환 유예도 최장 5년 동안 나눠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연착륙 방안을 고심하고 있지만 연쇄 부실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 대상이 된 중소기업·소상공인들 자금 사정이 여전히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지금부터라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제대로 된 대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연체율이나 NPL 비율 등 눈에 보이는 수치만 들여다보면 실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며 “실질적으로 차주들 상환능력이 개선되지 않고 있으므로 ‘숫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선제적인 건전성 강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