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Next Korea] 전기차 시대, 독일 자동차 공룡들의 위기
2023-07-24 06:00
벤츠·BMW는 노키아·코닥의 길로 가는가
- 독일 자동차 산업의 위기와 전망
자동차를 발명한 나라인 독일 자동차 산업이 2022년 역사상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5000억 유로대를 넘어 5061억 유로(약 771조8864억원)를 올렸다. 독일의 대표 자동차 브랜드·회사인 폭스바겐이 2790억 유로(약 379조2960억원), 메르세데스-벤츠가 1500억 유로(약 213조6000억원), BMW가 1112억 유로(약 158조3488억원)를 기록했다. 최고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성공에 취해 독일 자동차업계가 거만하고, 과거에 집착하고, 전망 부재로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독일 고급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과 공영방송 ARD뿐만 아니라 유럽 고급지인 스위스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NZZ)은 특집으로 독일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최근 NZZ는 “독일 자동차회사가 쥐라기 공원에 갖힌 신세 같고, 과거 몰락한 노키아·코닥의 운명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글에 ‘독일 자동차 산업’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많이 검색되는 단어가 ‘위기(Krise)'다. 그만큼 많은 언론들이 독일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이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으로 가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승자의 저주’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영국의 찰스 디킨슨이 말한 ‘최고이자 최악의 두 도시 이야기’가 독일 자동차 산업에 각기 다른 두 가지 현상, 즉 최고이자 동시에 최악으로 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최근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Handelsblatt)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독일 자동차 생산 대수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보다 50만대나 줄어들었고, 자동차 회사 수익이 20% 이상 급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독일 자동차 산업이 왜 위기로 가고 있는가?
유럽·독일 언론과 전문가들은 크게 4가지 원인과 배경으로 분석하고 있다. 먼저 독일은 ‘자동차 기술혁명’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동차 생산·이용 패러다임 전환에 기인한다. 석유와 디젤로 대표되는 내연기관차 시대에 독일 차들은 고급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였다. 벤츠, BMW, 아우디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탈탄소가 중요해진 시대에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가 대세로 가고 있다. 따라서 독일 자동차 브랜드는 낡은 이미지가 되었고 미국의 테슬라, 중국의 비야드(BYD) 등이 새로운 자동차 강자로 부상했다. 주식가치를 보면 미국의 테슬라는 7500억 유로로 폭스바겐·벤츠·BMW 주식을 모두 합친 것보다 3배나 많을 정도다. BYD는 350억 유로로 폭스바겐의 50% 넘어섰다. 또한 주가순자산비율(PBR)은 독일의 벤츠가 0.8, 폭스바겐이 0.4인 반면에 미국의 테슬라는 8.7, 중국의 BYD는 4.5로 나타났다. 이는 자동차 회사의 미래 가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2030년이면 유럽·독일은 내연기관차 등록을 받지 않는다. 내연기관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독일에서 신차를 구입할 때 약 49%가 전기차를 구매하고 있다. 갈수록 이 같은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시장은 이미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고 독일은 샌드위치 신세다.
둘째, 독일은 새로운 메가트렌드를 준비하지 못했다. 새 자동차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인 전기차, 배터리 기술, 디지털화, 네트워크화, 콘텐츠·게임화 부문에서 독일은 미국과 중국에 크게 밀리고 있다. 이제 자동차도 트랜스포머같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처럼 작동하는 기제로 변신하고 있다. 전기차·자율주행차에 들어갈 전체 소·부·장이 100만개나 된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 자동차 구성 요소가 내연기관차 시대와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미국의 테슬라와 중국의 BYD가 독일 시장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넷째, 글로벌 전기차 공급망 가치사슬의 변화다. 미국이 WTO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를 버리고 자국 이익을 우선하는 ‘게임 체인저’가 자동차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제조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제정해 전기차를 구입하면 보조금을 듬뿍 주고 있다. 또한 특정 국가의 전기차 배터리·광물을 일정 비율 이하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해 전기차 가치사슬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에 공장을 짓도록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전기차 보조금으로 7500달러(약 1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 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이 미국에 공장을 지었다.
내연기관차 시대 최강자였던 독일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과 중국에 샌드위치 당하는 형국에서 독일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 벤츠 등은 ‘품질의 전기차’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독일 경제 전체가 위기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에 값싼 에너지를 의존했고, 중국 수출시장이 한계에 부딪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더 이상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할 수 없게 되었고, 최고 수출시장 중국에서 독일 자동차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독일 정부는 ‘중국 전략’을 발표했다. 당장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위험 축소)'으로 점진적으로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여가겠다는 것이다. 당연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독일에서 어떤 시사점을 얻을 것인가?
먼저 현대자동차를 포함해 대한민국 자동차 회사들은 더욱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기술 발전에 정진할 때다. 과거 현대자동차가 한전의 부동산을 10조원에 살 것이 아니라 전기차·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투자했어야 했다. 현대 전기차 이이오닉이 테슬라, 비야드와 어깨를 견주는 세계 3대 브랜드로 부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지난 정부가 홍보한 수소차도 장기적으로는 중요할 수 있지만 당장은 전기차·자율주행차가 중요하고 이를 두고 세계가 경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이 명품 ‘호갱’이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인구 8300만명인 독일보다 인구 5100만명인 대한민국이 아직 독일의 벤츠·BMW·아우디 내연기관차를 더 많이 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반면에 독일 시민들과 중국 중산층들도 미국의 테슬라나 중국의 BYD 전기차를 더 많이 구매하고 있다.
따라서 지구온난화 대비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과 고위층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자동차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지도층들이 솔선수범해 전기차를 타고, 대통령·정부가 솔선수범해 전기차를 구입할 뿐 아니라 이를 지원하고, 글로벌 트렌드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표)독일 자동차매출액 추이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본(Bonn)대학 언론학 박사 ▷미국 조지타운대 방문학자 ▷중앙일보 기자·국회 자문교수 역임 ▷광주세계웹콘텐츠페스티벌 조직위원장 ▷현 경기대 산학협력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