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주택 전세제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2023-07-21 06:00

[사진=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전세사기 특별법 시행이 한 달 남짓 지났다. 법 시행 후 6개월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보고하고, 여야는 이를 토대로 법을 보완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 고충접수센터가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 425명 평균 연령은 36.4세였으며 그중 20·30대가 70%, 40대까지 포함하면 89.6%였다. 피해자 중 85.4%는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피해자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였다고 답변했다. 91%는 피해 구제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설문에 응답한 피해자 중 지원자 8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부분이 20·30대다. 해외에 오래 거주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으로 군에 입대까지 했던 20대 여성 피해자는 서민들 살기가 어렵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다.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20대 피해자는 시험을 포기했다. 건강이 악화돼 직장을 그만두거나 공황장애를 겪는 피해자도 있었다. 경찰이나 행정당국의 소극적인 태도는 이들을 더 절망하게 만들었다. 특별법에 대해서는 이미 전세대출로 빚더미에 앉은 피해자들에게 빚만 더 늘리도록 만드는 것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임차인으로서 피해자들의 삶은 전세사기 이전에도 이미 녹록지 않았다. 임대인에게 잠시 맡겼을 뿐 다시 돌려받아야 하는 자기 돈임에도 이를 제때 돌려받는 것은 험난한 일이었다.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임차인은 다시 대출을 받는 등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전세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혹은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임차인으로서 검토하고 분석해야 할 대상들이 너무 많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 ‘현재 주택가격’ ‘주택가격의 장래 변동 가능성’ ‘선순위 담보권의 존재 여부와 그 우선순위’ ‘지역별 최우선변제의 범위와 변동 여부’ ‘등기부상 확인되지 않는 선순위 채권(국세·지방세 등) 발생 가능성’ ‘주택이 공매나 경매에 넘어갔을 때 낙찰 가능한 가격 범위’ ‘우선변제권 충족 전에 하루 차이 등기부상 선순위 발생 여부’ 등을 살펴야 한다.

임대 기간에도 임차인은 ‘소유자 변경 여부’ ‘변경된 소유자가 명의 대여자일 가능성’ ‘변경된 소유자의 변제능력’ ‘변경된 소유자의 국세·지방세 등 우선순위 있는 채무 존재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임대 기간 만료 시에는 ‘임대인이 반환할 보증금 마련을 책임질 새로운 임차인의 등장 가능성’ ‘전세 가격 변동에 의한 역전세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결국 임차인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으려면 ‘민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임대차계약 관련 법률지식’ ‘공매·경매 등 국세징수법·민사집행법 관련 법률지식’ ‘주택가격∙전세가격 변화 예측을 위한 거시경제·미시경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부동산 전문가, 법률 전문가도 풀기 어려운 문제다. 대한민국에서 전세보증금 제때 돌려받기는 '러시안 룰렛'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전국 수백만 임차인들이 2년마다 이런 숙제를 계속 풀고 있다. 임차인의 노력과 시간을 고려하면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인 규모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정상일까? 과거의 사정을 기반으로 한 제도를 지금까지 끌고 오면서 문제가 터질 때마다 땜질식 처방을 반복한 것이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권 금융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 성행한 사금융 제도가 ‘계(契)’와 ‘전세’다. 금융산업 발달로 ‘계(契)’는 거의 사라졌다. ‘전세’는 40년 전 골격을 유지한 채로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보증금을 임대인에게 맡기고 다시 임대인에게서 받아야 하는 상황, 그 반환을 해당 주택으로만 담보하는 상황에서 전세사기 피해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임차인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통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제의 원인은 보증금 반환이 임대인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증금 반환을 임대인 리스크에서 절연해야 전세사기의 근본적인 방지가 가능하다. 그 해답은 특정금전신탁 형태 금융상품을 이용한 ‘보증금 의무신탁’ 제도다.